‘번개 치는 날 밤에’

박정철 (2013-10-12 11:14)

‘한 밤 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   태풍이 휩쓸고 간 뒤의 바닷가는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다. 마치 세상을 끝낼 것처럼 휘몰아치던 파도가 붉은 태양 빛 아래에서 잔잔하다. 눈을 들어 제대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다. 격정적 몸짓으로 공의의 손길을 펼치셨던 하나님께서 이 시간 화평한 가운데 나를 만나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다.   지난 목요일 밤에는 번개가 많이 쳤다. 번쩍번쩍 거리면서 비 오는 날 밤의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는 번개 앞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몸이 움츠려 들었다. 무심코 범했던 잘못들까지 밝히 보여주시려는 듯 그 밤에 하나님께 회개하며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무력한 존재인지를 웅장한 자연의 포효 앞에서 깨닫게 된다. 억수 같이 쏟아지는 비로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에, 삼킬 듯 달려드는 집채만한 파도 앞에서, 하나님의 회초리인 냥 번쩍이며 내리치는 번개 앞에서 난 사실 아무 것도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엄습한다. 배운 것이나 젊은 것이나 가진 것이 그 앞에서 별 것이냐 싶어진다.   웨슬리는 신대륙 조지아에서 3년간 선교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그의 열정과 헌신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열매는 그의 몫이 아니었다. 참담한 실패 뒤에 낙심하여 영국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항해의 길은 조지아선교의 현장처럼 험난했다. 엄청난 풍랑이 배를 덮쳐 왔다.   실패의 참담함이 채 진정되기도 전에 웨슬리의 마음은 또다시 동요하기 시작했다. 풍랑은 마치 실패자인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처럼 여겨졌다. 이제 곧 자신은 마치 요나와도 같이 저 풍랑 속으로 던져질 것만 같았다. 웨슬리의 가슴은 도무지 감당치 못할 심한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배를 뒤덮고 있는 그 때에 웨슬리는 한 무리의 크리스챤을 목도했다. 그들은 모라비안 평신도들이었다. 그들은 그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찬송과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죽음의 공포가 없었다. 웨슬리는 모라비안 평신도들의 그 의연함과 믿음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체험은 웨슬리로 하여금 믿음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 사건이었다.   다시 잔잔해진 바다 앞에 섰다. 그저 평온한데, 성령께서 주시는 깨달음이 있다. 잔잔해진 바다 앞에서만 잔잔하지 말고, 집어 삼킬 듯한 거센 파도 앞에서도 잔잔해질 수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평온한 삶의 바다에서만 평온을 유지하지 말고, 휘몰아치는 광풍 속에서도 평온할 수 있어야 하겠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