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박정철 (2013-09-07 16:05)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산 사방에 복을 내리며 때를 따라 소낙비를 내리되 복된 소낙비를 내리리라 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라’(겔 34:26-27a)   어릴 때 선생님께서 해 주셨던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에 길 가는 나그네가 잠시 어떤 집에 들르게 됩니다. 주인이 보기에 좀 시간이 지났다 싶은데도 이 나그네가 떠날 생각을 하지 않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식사 할 시간도 되었고 해서 주인이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들어서 입을 엽니다. “여보시오, 가라고 가랑비가 내리고 있지 않습니까.” 했더니 이 나그네가 한다는 말이 “있으라고 이슬비가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저께 금요일 아침부터 토요일 늦게까지 계속해서 비가 내립니다. 지난 여름 동안 뜨겁게 달궈졌던 대지를 적셔주려는지, 이미 와 있는 가을을 더 재촉하려는지 쉬지 않고 내립니다. 여름은 더 있겠다고 이슬비라 할 것이고 가을은 이제 가라고 가랑비라 할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내리는 비가 바깥으로 향하던 걸음을 오랜만에 안으로 향하게 합니다. 고향에서 걸려 온 전화에서는 “오랜만에 비가 와서 모처럼 푹 쉬고 있다.”고 합니다. 그간 모두들 힘들고 지쳤을 것인데, 이 비로 충분한 휴식을 취했으면 좋겠습니다. 비가 가져다주는 깊은 여운 속에서 잊고 지냈던 것들에 대한 기억이 새롭게 피어났으면 합니다.   가을비가 이미 와 있는 가을을 더 깊이 받아들이라는 것 같습니다. 언제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쳐버릴 수 있는 이 가을을 그냥 가게 하지 말라는 것 같습니다. 빗소리가 가을을 통해서만 가져볼 수 있는 깊은 묵상과 기도 속에서 가을의 풍성함을 누리라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비가 내립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가을비입니다. 성령의 단비입니다. 이 비로 이미 우리들과 함께 계시는 주님을 깊이 체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아내는 이번 가을에 입힐 아이들의 옷이 없는지 걱정인 것 같은데, 저마다 십자가의 붉은 옷으로 가을과 함께 물들어져 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