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들어섰습니다.

박정철 (2012-09-08 22:1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8-9)   가을이 자기 자리를 잡아가면서 제법 시원해졌다. 그 무더웠던 여름날의 흔적이 아직까지 곳곳에 남아 있지만 그래도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울 때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시원한 초가을 바람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절로 감사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내 이런 날이 있을 줄 알아 그 무더웠던 날들도 이겨낼 줄 알았을 것인데, 창문에 비쳐 내리는 하얀 달빛은 하늘의 은혜로서 넉넉하다.   바람이 바뀌면서 보니까 벼가 심겨진 논의 색깔도 변하기 시작한다. 어떻게 그렇게도 잘 맞아 떨어지는지 초가을 바람의 노래에 벼들이 춤들로 화답하는 듯하다.   벼 이삭이 노랗게 영글어가는 모습에 보는 사람도 괜히 기분이 좋고 흥얼거려진다. 그 뜨거웠던 여름날의 햇볕도 잘도 받아내고, 태풍의 강한 바람도 잘 버텨낸 그 모습이 참 대견스럽다. 마치 인생이란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매일 아침, 그리고도 때마다 거울을 본다. 내 얼굴이 얼마나 잘 익어가고 영글어가고 있는지를 본다. 귀밑머리에 어느새 물들어오기 시작한 흰머리가 이제 전혀 낯설지 않게 여겨진다. 글쎄 어떤 여 집사님이 자기들이 목사님을 힘들게 해서 목사님 머리가 희어졌다고 괜히 미안한 표정을 지어주기도 하는데, 내게도 이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인생의 가을이 시작되어진 것이리라. 풋 냄새 풀풀 풍기던 때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리라.   영글어가고 있는 벼 이삭을 보면서 고개를 더 숙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져가야 한다는 것과 보는 이로 좀 더 넉넉하고 느긋하게 다가설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 보기만 하면 대들면서 덤벼드는 싸움닭이 아니라 알을 품고 새끼들을 품어주는 암탉처럼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다는 것.      하늘의 가을 햇살이 오늘도 그 넓은 논밭에 참으로 넉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