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을 움켜잡으며

박정철 (2012-08-18 16:35)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전 12:1-2)   아직까지 상당히 덥습니다만 우리에게 남은 여름이 얼마나 될지를 생각해 봅니다. 오뉴월에 쬐던 모닥불도 꺼지려고 하면 아쉬운 마음이 든다고 합니다만 이런 것을 보면 우리 인생들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생에 대한 날들이 줄어들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매미들이 목이 터져라 울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어렴풋 드는 생각은 사라지는 날들에 대한 애잔함이나 애절함 같은 것들이 묻어있지는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생의 의지 같은 것일까요. 그 의지가 허무로 이어지지는 않을까요.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한 여름날을 뜨겁게 울부짖었던 그 매미 소리들도 가을 풀벌레들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고 말겠지요.   한 목사님이 휴가차 잠시 양남에 들렀습니다. 찻집에 와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그래, 인생은 주고받는 것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인생은 가는 것이라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 새 머리와 수염에 흰 색이 잘 자리 잡힌 모습을 띠고서는 한 말씀을 하십니다. 예전에는 많은 것들이 다 남의 이야기로만 들렸는데 이제는 다 내 이야기 같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거의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50이 되면 무덤에서 자기를 부른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빈 말이 아닌 듯 벌써 그렇게 되어진 사실에 놀라며 너털웃음을 지어봅니다.   이 여름이 얼마나 남았을까요. 그렇게 북적대던 양남 솔밭도 이제는 한산해졌습니다. 그렇게 요란하던 진리 바닷가에도 어느새 피곤해 보이는 안전 요원의 힘없는 휘슬소리만 남아 있는 듯합니다. 무더위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밤도 이제는 창문을 닫아야만 되는 때가 왔습니다. 그러다 보일러를 돌려서 따뜻하게 자고 싶은 날도 얼마 남지 않았겠지요.   우리 인생의 남은 날들은 얼마나 될까요. 오늘 이 자리에서 여름의 끝자락을 움켜잡습니다. 아직까지 더운 날씨에 바다를 한 번 더 향합니다. 더위만이 줄 수 있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팥빙수도 먹어야겠고, 아이들을 꼬드겨 냉면도 같이 먹어야겠습니다. 말씀도 잘 준비해서 여름에 피곤해져 있은 성도들에게 영양보충이라도 시켜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여름의 끝자락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날이 되게 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