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국밥과 나의 40代

이순락 (2012-01-02 19:13)

돼지국밥, 나에겐 가장 좋은 별미 나는 돼지국밥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이상으로 무척 즐겨먹는다.  나에게 있어서 돼지국밥은 값싸고, 맛있고, 배불리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돼지국밥 하는 식당에 들어서면 그곳이 어느 도시건 시골에서건 마음 편히 들어설 수 있다.  식당의 분위기는 언제나 편하다.  지극히 서민적이면서 돼지국밥의 구수한 냄새처럼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 나오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이, 비교적 장사가 잘되 보이는 돼지국밥집을 찾아간다.  그런 집은 항상 큰 가마솥이나 큰 솥에 돼지 뼈를 곰국 끓이듯 계속해서 끓이고 있다.  국밥 그릇은 대체로 옹기 형 주발이다.  그 큼지막한 주발에 구수한 육수가 가득하다.  그리고 돼지고기며 내장(암 뽕)이 수북이 담겨 보는 순간부터 풍성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반찬으로는 통무우 김치에 새우젖은 필수다.  게다가 양파와 맛있는 된장에 붉은 고추장과 마늘로 다져진 양념(다대기)은 단순하면서도 부족함 없는 차림으로 나온다.  (장로가 되어 글로 표현하기가 좀 뭣하지만)간단한 소주 한 잔씩 하는 데는 국밥에 담긴 고기를 건져 안주 삼으면 마시는데 거의 지장이 없다.  따로 돼지수육이나 암 뽕을 시키지 않아도 말이다.   며칠 전, 저녁 시간에 교회 집사님 한 분이 가게로 찾아왔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장로님, 저녁 드셔야지요? 제가 한 그릇 사겠습니다.”  “아니, 밥을 사도 내가 사야지 집사님이 사다니요?”  “아닙니다.  좋은데 안내하겠습니다.”  “그럽시다. 근데 존데가 어딘데요?”  “아, 예. 돼지국밥집입니다.  괜찮겠습니까?”  “아, 돼지국밥, 좋고말고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돼지국밥이라니...얼른 갑시다.”  이렇게 하여 선산에서 비교적 잘한다고 소문난 돼지국밥집에 갔었다.  가끔씩 들르는 곳이라 더욱 반갑고 편한 마음이었다.  ‘다 좋은데 당최 저놈의 담배연기 때문에 미치겠네...’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내 치열한 삶의 한 가운데 돼지국밥이 있었네! 내가 돼지국밥을 특히 좋아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추억 같은 젊은 날의 단상(斷想)이 있는 것이다.  내 인생에 있어서 40代 시절, 비록 길지 않은 세월 동안이었지만 가장 열정적, 도전적인 치열한 삶을 살았었다. 특히 그 당시 이 돼지국밥과 함께 했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기였다. 대구에서 안동대학에 시간강사로 5년간 계속 출강했었던 때가 있었다.  전문대 겸임교수에서 국립대학 교수자리로 변신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5년간 내리 출강했었던 것이다.  그 꿈은 결국 무산되고 말았지만...  그 당시엔 대구에서 안동까지는 비포장 국도였다.  덜컹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다녔던 것이다(그 뒤에는 도로가 포장되었고, 소위 자가용 마이카를 타고 다니기도 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대구 수성 못 끝 지산동.  새벽같이 일어나 대구북부시외버스터미널에 가서 시외버스를 탄다.  안동까지.  안동버스터미널에서는 택시를 타고 안동대학까지 달려간다.  하루 6시간 연속 강의를 마치고 다시 부리나케 대구로 온다.  대구 북부버스터미널에 도착할 즈음이면 피로와 시장기에 허기진 몸은 파김치 상태다.  그런 몸으로 돼지국밥집으로 향한다.  언제든지 가면 늘 준비된 국밥이 대기하고 있으니 얼마나 반갑고 편리한지 모른다.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맛있는 이 돼지국밥 주심에 정말 감사합니다.’하면서 뚝딱해치운다.  그리곤 부리나케 택시를 타고 야간 강의를 위하여 달려가곤 했었다.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이지만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있다.  안동대학에 출강 시 있었던 일이다.  그 당시로는 국제무역 통신수단으로 가장 빠르고 편리한 방법으로 텔렉스(Telex : 영어문자로만 보낼 수 있는 통신수단)가 있었다.  그 즈음에 오늘날의 팩시밀리(Fax)가 출현, 무역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었다.  그야말로 무역통신 수단으로서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통신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동대학 무역학과 교수님들과 학생들에게 팩시밀리에 대한 설명을 했다.  팩스통신을 도대체 그들은 이해를 못하였던 것이다.  비록 국제무역 업무를 첨병처럼 앞서 연구하는 입장에 있었지만.  “전화통신방법인데, 그림이며 도면을 국내든 외국이든 실시간으로 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 모두는 ‘이 친구가 대구에 있답시고 허풍이 심해도 너무 지나치군...’하는 정도였다.  연암 박지원 선생이 중국(청)을 방문, 새로운 문물에 너무나 충격을 받아 그 기행문을 ‘열하일기’로 발표했었다.  그 글로인해 그는 허풍쟁이에 사기꾼이라는 식으로 매도당했다.  당시의 정조임금 마저도 격노하셨다고 했다.  아마 나 자신도 거의 그런 대접(?)을 받았던 느낌이었다. 1인 6역의 치열한 40代 삶 여하튼 나는 그 당시 그야말로 숨 쉴 여가 없이 살았다.  1인 6~7역을 감당하면서 달리고 뛰었던 것이다.  하찮은 늙은이의 하릴없는 회고담이겠지만...  첫 번째로, 대학원에서 박사학위과정을 이수하는 중에 있었다.  명문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인지 모르지만 지도교수님들은 그야말로 스파르타식으로  지도했었다.  수강하는 박사과정 학생은 2~3명이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강의 과목 거의 대부분 원서(영문중심)로 했었다.  그 당시 프랑스 파리1대학 박사출신의 김 모 교수.  그분의 ‘남북관통, 중국 또는 러시아를 경유하는 대륙 간 철로운송 이론’은 너무도 열정적이었다.  아니 당시 우리에겐 거의 전설적이었다.  그분의 선각자적인 학문의 진수가.  두 번째 업무로 대학의 겸임교수로 반쪽자리(?) 교수였다.  주당 8시간씩 책임강의에 비교적 후한 월급이었고, 방학 때도 월급은 어김없이 지급되었다.  (근자에 내가 듣기로는 요즘 대부분의 겸임교수는 이름뿐인 교수이고 월급 같은 것은 아예 없다고 하여 이해가 되지 않고 있다.) 세 번째 업무가 두 대학(국립안동대학, 계명대학교)의 시간 강사였다.  이른 바 보따리 장사를 했었다.  네 번째로 나의 주된 업무로서 자동차부품을 수출하는 중소기업의 무역부장 업무였다.  중소기업치고는 비교적 고액의 월급쟁이로 일을 하였었다.  다섯 번째로 스웨덴 회사(자동차부품 전문 수입업체)의 한국 지사장 일을 했었다.  본사에서 수입할 때 및 수출중소업체가 수출할 때 커미션을 받는 조건이었다.  여섯 번째로 대구자동차부품수출협회의 무역고문업무였다.  회원사에 대한 무역업무(통역, 계약 등)를 아르바이트 식으로 맡아 처리하였었다.  그야말로 열심히 치열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지금은 돈 못 버는 늙은이처지라 못내 부끄럽고 아쉬울 뿐이다.  그러나 젊은 날, 그 중에서 지난 40代를 회고하면 결코 부끄럽지 않은 세월을 보냈음을 자부한다.   영국 속담에 ‘중요한 일은 (가장)바쁜 사람에게 시켜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여하튼 나는 자긍심을 가지고 쉴 새 없이 열심히 뛰면서 살았던 것이다. 예수님의 ‘생선 한 마리 식사’하심에 비하면... 그러한 바쁜 나날, 삶의 중심에서 마누라 이외에 나를 받쳐준 귀한 영양보양식이 바로 돼지국밥이었다.  그래서 지금껏 추억을 씹듯이 돼지국밥을 즐겨먹는다.  고급 뷔페식사도 좋다.  그러나 값싸고 마음 편히 맛있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돼지국밥.  나에겐 더없이 제격이다.  우리 주님은 단촐한 빵 한 조각, 포도주 한 잔으로 만찬을 하셨다.  배고픈 수많은 군중들에게 빵 한 조각, 생선 한 마리씩으로 배불리 채워 주셨다는 이적도 보았지 않았는가.  더구나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예수님.  그분은 생선 한 마리로 식사하셨다.  그에 비하면 돼지국밥은 그 얼마나 푸짐한 밥상인가.  어쩌면 이 돼지국밥 한 그릇도 나에겐 과분한 것.   늘 겸허한 자세로 마주하여야 하리라.   E-Mail : srlee15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