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달이 떴습니다.

박정철 (2014-09-06 14:37)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36)   이른 추석이다. 여느 해보다 이르다. 여름의 끝자락을 잡고는 놓지 않으려는 매미들의 외마디 외침은 계속되고 있다. 이웃집 감나무에는 감들이 이제 색이 감돌기 시작하고 있고, 대추나무 열매에서는 아직도 푸른빛뿐이다.   추석을 앞두고 선 양남 대목장에서 보니 수산물 가격이 만만치 않다. 작은 문어 한 마리의 가격이 요새 아이들의 말을 빌려보자면 그야말로 ‘헐’이다. 때 이른 추석이라 농산물 가격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빠듯한 서민 살림으로서는 추석 장보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했는데, 올해만큼은 그 말이 어떨지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네 아낙들의 손길은 분주하다. 명절 기간 며칠 동안 함께 할 가족들을 먹일, 혹 이런 날이면 더 외롭고 힘들어 할 이웃들을 찾아 건넬 음식 준비로 아낙네들의 손길을 바쁘디 바쁘고 그 마음은 참으로 곱디 곱다. 더 먹이고 싶고 더 나누고 싶은 그네들의 마음이 한가위 보름달 못지않게 넉넉하고 풍성하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었는데 달빛이 창문을 통해 환하게 비춰온다. 그 달빛에 문득 지난날 군에 있었을 때가 어렴풋 생각이 난다. 언제 적이건만 군에 있었을 때의 생활은 내 삶에 있어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한 번씩 그때의 일을 악몽처럼 꾸고 있으니 말이다.   그날 밤에도 절로 그때의 일이 며칠 전에 있었던 일처럼 떠올랐다. 그날 밤에도 달이 얼마나 밝던지. 지친 몸을 침낭 속에 넣었지만 잠이 오지를 않았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그 달빛과 씨름을 하느라 참 힘들었었다. 군인에게 있어 한가위 보름달빛은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가졌던 생각들이 있다. 다 좋아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들이 다 좋아하는 날에도 작은 구석 한 편에서는 그 날이 속히 지나가버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흥겹고 흥청거리는 날에 오히려 아파하며 괴로워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 구석에 있을 작은 자들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하겠다는 것.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이 찾아왔다. 둥근 달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