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장을 찢으며’

박정철 (2014-08-30 09:21)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요 21:17)   그간 비가 무진장 왔는데 오늘도 비소식이 있다. ‘비 설거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세상에 씻겨야 할 더러운 것들이 많은 모양이다. 올 여름은 거의 비와 함께 보낸 것 같다.   그러는 중에 벌써 아침저녁으로는 가을이 왔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옷가지들을 부른다. 지난밤에는 얇은 이불을 덮고 자다가 추워서 두꺼운 이불을 꺼내 덮었다.   벌써 9월이 시작된다. 무더운 여름이 빨리 지나기를 바란 탓일까. 추운 겨울이 바삐 지나가기를 바란 탓일까. 힘든 시간이 있을 때마다 속히 지나가기를 바란 때문일까. 아이들이 빨리 성장해 주기를 원할 탓일까. 군에 있을 때 빨리 시간이 지나가기를 간절히 소원했던 탓일까 하루하루가 쏜 화살 같다.   늦잠을 자다 일어나 시계 보기가 미안하고 두려울 때가 있는데, 또 한 달이 지나가버린 달력을 바라보기가 겁이 나면서 송구스럽다. 잘 살아가고 있나 싶은 생각 때문일 것이고, 이렇게 살면 되겠나 싶은 마음에서겠다. 한 시간 한 시간, 한 사람 한 사람이 참으로 소중한데 그 한 시간과 한 사람을 대하는 내 마음에 진정성이 얼마나 있었는지 묻고 싶다. 그래서 깊어졌는지 지경은 넓혀졌는지.   후회로 점철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고, 실수와 실패로 얼룩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일 것이지만, 오늘 디베랴 호수에서 큰 수심을 안고 그물을 끌어올리던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아무 말 없이 고기를 구워 “조반을 먹으라” 하셨던 주님께서 함께 하셨으면 좋겠다.   육신적인 일에 파묻혀 고되고 바쁜 일상 속에서 고픈 배를 채워내기에 급급했던, 그래서 목적도 방향도 무디어져버려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오늘 우리네 이 자리에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며 “내 양을 먹이라” 하셨던 주님께서 만나주셨으면 좋겠다.   8월의 달력을 찢어야 한다. 달력을 찢으며 몸과 마음도 함께 찢겼으면 좋겠다. 이전 것들은 보내고 새로운 것들로 이 가을을 맞이하면서 남은 생애를 꾹꾹 눌러가며 채워갔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선선한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