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고맙지요.

박정철 (2013-11-23 12:11)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사람들이 종종 물어본다. 아이들도 묻는다. “아빠랑 엄마랑 어떻게 만나서 결혼했어?” 그러면 서둘러 정리를 해 준다. “엄마가 아빠를 좋아해서 결혼했지.” 그러면 아내가 볼멘소리로 “아니, 사람이 솔직해야지 왜 그래요. 자기가 나 좋아한다고 쫓아다닐 때는 언제고.” 그러면 에둘러 웃으면서 한 마디 더 해 본다. “애들아, 아빠가 그때 엄마 안 만나주었으면 엄마는 아마 지금도 혼자 살고 있을 걸.”   믿거나 말거나, 마치 내가 큰 선심이라도 써서 같이 살아가고 있는 양 큰 소리를 친다. 나 같은 사람 천지에 어디 가서 만날 수 있겠느냐는 식으로 으스대보지만 내가 나를 잘 알기에 이내 곧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한다. “여보, 나 같은 사람하고 살아줘서 고마워. 당신 아니면 나 같은 사람 누가 쳐다보기나 했겠어.” 그 말에 은혜가 있고 평화가 있다.   은혜를 입으면 ‘나 같이 못난 인간’이지만 율법 가운데 살면 ‘나 같은 잘난 인간’이겠지.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에 참 잘난 인간이었지 않았던가. 참 열심히 살았고, 자랑할 것도 얼마나 많았던지.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빌 3:5,6) 하지 않았던가.   그랬던 사울이 바울이 되더니 말끝마다 은혜가 넘쳐난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열심은 열심인데, 자기 육체를 신뢰하는 열심이 아니라 은혜 안에서의 열심이다. 자기 이름을 남기기 위한 열심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존귀하게 하려는 열심이다.   어느 목사님이 한 번은 사역하는 교회에서 그런다. “이 교회는 나에게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좋은 때에 여기에서 사역하고 있기 때문이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허, 정말 그럴까. 인생에 있어 귀하지 않을 때가 어디 있겠느냐만은 그래도 젊을 때에 그 교회를 위해서 사역할 수 있게 해 준 그 교회가 고맙지는 않은 것일까.   11월의 마지막 주, 마지막 잎새 마냥 차가운 바람에 떤다. 따뜻한 커피라도 마실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고맙게 여겨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