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 발자국

박정철 (2013-06-01 19:45)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 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사 5:4)   모내기를 끝낸 논들이 물을 그득하게 품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넉넉해 보인다. 잘 정리된 논들마다 풍년을 기대하는 농부들의 마음처럼 부푼 꿈으로 넘쳐나고 있다. 힘을 들이고 공을 들인 것만큼 풍성한 결실로 가을을 맞았으면 좋겠다.   부모님께서 자랄 때에 종종 해 주신 말씀이 있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 그것은 자녀들로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다해서 살라는 말씀이지 싶다.   포도 한 송이를 길러내는데 얼마나 많은 손길이 미치는지 모른다. 갓난아기를 어르고 달래듯이 한 송이 한 송이를 매만지고 돌보면서 마음을 쏟고 길러내는 모습이 숭고하기까지 하다. 우리들의 삶에서 맺어가야 할 열매가 그저 그런 식으로 맺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농부들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오래 전 고향집 포도밭 위쪽으로 다른 집 포도밭이 있었는데, 한 번은 보니까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아 엉망이었다. 심겨진 포도나무는 손질이 되지 않아 제멋대로였고, 다른 잡풀과 잡목들은 마치 예전부터 자기들 자리였었는 것처럼 견고한 진을 이루고 있었다. 포도밭인지 버려진 곳인지 전혀 분간이 되지를 않았다.   가시덤불과 엉겅퀴, 녹슨 철사들이 뒤엉켜져 있는 그 자리가 내 심령의 밭이라도 될 것 같아 두려움이 일었다. 분노의 쓴 뿌리들로, 교만과 미움의 쓴 뿌리들로 얽히고설켜 변변한 열매 하나 제대로 맺어가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바쁜 농부들의 손길을 보고 있다. 이런 날이면 손이 10개라도 모자랄 것인데, 일찍 뜨는 해를 따라 늦게 지는 해에 맞춰서 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에게서 열매 맺지 못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답을 찾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