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론가 떠나고 싶습니다.’

박정철 (2012-10-13 23:06)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가을은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다. 아이들이 즐겨보는 ‘개그콘서트’라는 프로에 ‘멘붕 스쿨’이라는 코너가 있다. 몇몇의 엉뚱한 학생들이 나와서는 재미있게 코너는 꾸며 가는데, 하루는 그중에 한 여학생이 선생님께 와서는 “선생님, 가을은 독사의 계절이잖아요.” 그런다. 독사의 계절이란다. 그랬더니 선생님 왈 “아휴, 독사의 계절이 아니라 독서의 계절이겠지.”   그 내용을 보면서 아이들이 자지러지듯이 웃는다. 그러고는 좀 지나서 자기들끼리 그 흉내를 내는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인데, 독사의 계절이래. 참 웃기다. 그지.” 그때 그 아이들의 말을 받아서는 그랬다. “애들아,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독사의 계절이기도 해. 이 가을에 독사가 얼마나 많은 독을 품고 있는지 몰라.”   독사든 독서든 여하튼 이 가을이 선선해서 좋다. 하늘은 그저 푸르기만 한데, 모든 만물들이 다 자기들의 계절인 양 오곡백과가 무르익어가고 있다. 농부들의 바쁜 손길을 더 바삐 재촉하고 있다.   또한 이 가을에는 밤이 깊어지면서 사색의 여행을 떠날 수 있어서 좋다. 괜한 외로움과 그리움들이 짙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날들이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지는 때이기도 하다. 이 맘 때쯤이면 어느 집사님은 휴가를 내고 자기 혼자서 며칠씩 어디론가 떠나곤 했었는데. 아무도 자기가 가는 길을 일러주지 않고 그저 발길 닿은 대로 떠나버리곤 했었는데.   이 가을, 우리는 모두들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는 때다. 가을 단풍이 물들어갈 때 내 인생을 물들이고 싶고, 그 고운 단풍이 어느 새 낙엽이 되어 떨어져 버릴 때 나 또한 그 낙엽처럼 져 버리고 말 것인데 이 가을을 그냥 보내고 싶지 만은 않을 것이다.   특별 새벽 기도회 기간이다. 새벽마다 부르짖는 성도들의 기도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인생의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기도의 가을 여행을 통해서 영혼의 넉넉함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절대자를 향해 떠나는 기도의 여행이 그 어느 여행보다 즐거울 것인데,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 전문이다.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 겸허(謙虛)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의 영혼, / 굽이치는 바다와 /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