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거나’ ‘되는 대로’

박정철 (2012-10-06 18:58)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목회자로서 설교의 줄기를 잡아가는 것이 쉽지 않듯 아내도 늘 끼니 때가 되면 묻는다. “오늘 점심은 뭘 먹지.” 점심을 먹으면서 “저녁은 뭘 먹지.” 그러면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이렇게 한 마디 한다. “되는 대로 먹자.” “이대로 먹으면 되지.”   그런데 막상 아내가 정말 되는 대로 밥상을 차렸다가는 은근히 까탈스러운 남편의 핀잔을 피해가기가 어렵다. “이렇게 먹고 무슨 힘을 쓸 수 있겠느냐.” “남편이 말이지. 당신에게는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냐.”고. 이런 남편과 살아주는 아내가 고맙다.   어떤 글을 읽는데 이런 비슷한 내용이 눈에 띈 적이 있다. 식당에 가서 ‘아무 거나 먹자’고 하는 사람은 책임감이 없고 나쁜 사람이라는 거다. 같이 모여서 뭘 시키자고 할 때는 아무 거나 먹자고 해 놓고는, 막상 아무 것이나 시켜 놓으면 ‘이런 것을 어떻게 시킬 수 있냐’고 한다는 것이다. 이러지 말자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정말 ‘아무 거나’ ‘되는 대로’라는 말을 쉽게 남발하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그런 말들이 책임 회피성 말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 거나 먹자고 했으면, 아무 거나 하자고 했으면 나중에 별 다른 말을 하지 말든가 말이다.   사람이 뭔가를 선택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짬짜면’이라는 메뉴까지 중국집에 생기지 않았던가. 한 번은 마트에 가서 식사 때가 되어 메뉴를 고르는데 ‘김떡순’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 이름처럼 말이다. 그 이름이 하도 웃기고 재미있어서 알고 보니 ‘김떡순’이 바로 ‘김밥, 떡볶이, 순대’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메뉴이다. 시켜서 먹어보니 맛도 맛이려니와 사람들의 심리를 어떻게 이렇게 잘 알고 이런 메뉴까지 만들었을까 생각을 하니 그저 웃음이 나온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걸어보지 못한 길에 대한 막연한 어떤 동경심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아닌 내가 걸어가지 않은 또 다른 길이 내가 가야만 했던 길이었지 않았을까 하면서 말이다. 물론 또 다른 길 가운데 있었더라면 지금 가고 있는 길에 대한 동경심이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되었다. 아내는 어떤 밥상을 준비해 놓고 있을까. 그 밥상을 두고 아무 말 하지 말아야겠다. 우걱우걱 맛있게 먹어야겠다. 되는 대로 살지 말고, 지치고 귀찮더라도 아무렇게나 살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