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고 편안한가.

박정철 (2012-09-29 14:34)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6-27)   서편으로 해가 질 때쯤이면 동해바다의 가을 찬바람은 드세다. 추석을 앞두고 배들이 출항을 해서 고기를 많이 잡아와야 어부도 소비자들도 서로간 기분이 좋으려만, 이런 날들이면 배가 나가기가 쉽지가 않다. 바람이 잦아지면 좋겠다.   어떤 한 부부가 한 손에는 앉을 자리를 들고 한 손에는 먹을거리를 담은 봉지를 들고서는 해안가를 죽 둘러 다닌다. 그러다가 바람을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차를 타고 그냥 쏙 가버린다. 좋은 시간을 가지려고 했을 것인데 찬바람이 그 시간을 허용해주지를 않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좀 따뜻하고 잔잔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사람들이 찾아들고 그래야 사람들이 머물 수 있을 것인데, 북풍한설처럼 차가우면 그 바람을 맞는 사람들까지 다 얼어붙게 만들겠지만 따뜻한 봄바람이면 그 바람에 모든 것이 넉넉하고 편안해 질 것이다.    내가 좀 더 잔잔하고 따뜻해져야 되겠다. 내 속에 어떤 분노와 불평들이 일렁이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되겠고, 그것으로 마귀가 틈을 타서 사로잡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수 있어야 되겠다. 여유와 배려의 삶을 가꾸어 나갈 때에 멀리 떠나 있었던 이들도 추석을 맞아 찾아들지 않겠는가.   군대에 있었을 때에 일병 때쯤 되었을까. 오후 철책 근무를 끝내고 부대 내무반으로 복귀해야 될 때에 얼마나 가기가 싫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든 천천히 더 천천히 걸으며 시간을 길게 잡아 늘여놓았던 적이 있다. 안에서의 시간보다 밖에서의 시간이 더 좋았기 때문일 것인데.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이 발걸음이 무겁지나 않을까. 퇴근하는 남편들의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나 되지 않을까. 교회당을 향해 오는 교인들의 발걸음이 마지못한 걸음이지는 않을까.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나는. 어떤 자리가 되게 해야 할까. 우리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계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말이다. 추석이다. 양남 하서리 해안 공원이 잘 단장되어 있다. 며칠 전부터 단장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깨끗해졌다. 추석 고향을 찾아 다녀가는 이들을 잘 맞이해주고 싶은 고향의 마음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