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인 줄만 알았습니다.

박정철 (2013-04-13 10:51)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요 11:3)   뽑을 마음조차 먹지 못하게 하는 흰머리가 생겨나고, 눈가에 주름이 깊게 잡히면서 내게 주어진 세월도 이제는 많이 흘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느 모임에 갔더니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 “야, 목사님. 예전에는 항상 청년 같더니 이제는 아저씨가 다 되었네요.” 듣기에는 별로였지만 그 말에 내가 지금 어느 자리에 와 있는지를 보게 된다.   “이 좋을 때 많이 먹어라.” 하셨던 분들의 이야기가 벌써 내가 할 이야기가 된 듯싶다. 어릴 적 할머니 주머니 속에 있었던 박하사탕도 그렇게 먹기 싫더니 이제는 다른 어떤 사탕들보다 입안이 개운할 정도로 맛이 좋다.   예전에는 눈도 참 좋았었는데, 양쪽 시력이 거의 ‘2.0’ ‘1,5’ 정도는 유지했으니 말이다. 어머니 손에 있던 실을 가져다가는 ‘그게 그렇게 힘이 드냐’는 듯 보란 듯이 바늘귀에 척척 잘도 끼웠었는데, 이제는 그 실을 들고 게슴츠레해야 눈을 뜨고 있자니 어머니께 불효한 듯 죄송하다.   하루는 책을 가까이에서 보는데 글씨가 흐릿흐릿하다. 그래서 좀 눈에서 떼어서 봤더니 이게 도대체 웬일인가. 너무 선명하게 잘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 표현대로 해 보자면 뒤로 자빠질 뻔했다. 이게 정말 내게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가. 이러한 것들 하나 하나가 어느 새 남의 일만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어느 연세 드신 분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젊었을 때에는 병원 한 번 가 본적이 없는데 이제는 방 구석구석 눈에 보이는 곳들마다 약봉지가 수북이 쌓여 있다.” 그것을 보게 되면서 그분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 말씀이 그 분의 말씀만이 아닐 것임을 나도 곧 알게 될 것인데.   꽃이 피어나고 연한 푸른 잎사귀가 돋아나는 이 찬란한 봄에 낙엽 떨어지는 갈색의 늦가을을 보고 있다. 오늘 이런 날들도 오래지 않을 것인데. 한창 힘이 솟아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들었던 ‘이 좋을 때 많이 먹으라’는 말을 하고, 피곤하고 귀찮아도 꼭 이를 닦으라고 채근한다.   이 봄날에 아이들이 공부한답시고 아무렇지도 않게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먼 훗날 자기들 앞에서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는 고기 앞에서 하늘나라에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웃고 있을 아이들을 미리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