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연필

박정철 (2012-12-22 13:30)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눅 2:8)   책상에 앉아 뭐라도 긁적이어야 하는 자리에 있다 보니 공책이나 볼펜을 계속해서 써가야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써가다 보면 다 쓰게 될 때가 있는데 그러면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 공책이나 볼펜 같은 것을 다 쓰는 것이 뭐 그리 기분 좋은 일이야 하겠지만 그래도 쓸 만한 것이 함부로 버려지는 이 세상에서 마치 내가 이 세대를 거슬려 사는 것 같아서이다.     어릴 때에는 몽당연필을 참 많이 썼었다. 필통 속에는 거의 몽당 연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볼펜 끝에 끼워 놓은 몽당 연필들이었는데, 그때는 보란 듯이 꺼내놓지도 못했고 괜히 부끄럽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 내 책상 위에는 몇 년째 같이하고 있는 파란색 색연필이 한 자루 있다. 밑줄을 긋기도 하고 찾아보기도 쉽게 표시를 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색연필인데 벌써 그 세월이 몇 년째인지 모른다. 물론 그 뒷부분에는 어김없이 볼펜이 끼워져 있다. 닳을 대로 닳아 볼품도 없고 모양도 별로지만 선뜻 버리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1-2년은 족히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몽당연필을 보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고맙게 다가온다. 이 세상 세파에 닳아지고 작아져서 버려져도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우리들이건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크신 긍휼로 버리시지 않으시고 아직까지 써 가시는 것을 보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잘난 사람도 많고 잘할 사람도 참으로 많은데 못난 나를 싫어버리지 아니하시고 볼펜 뒷부분에 끼워놓고서는 언제나처럼 써나가고 계시는 것이다.   성탄절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교회에서는 기관마다 성탄 축하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저 들밖에 한 밤 중에 양 틈에 자던 목자들 천사들이 전하여 준 주 나신 소식 들었네 노엘 노엘 노엘 노엘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 하늘 영광 버리시고 마구간까지 찾아오신 주님, 구원에서 멀어 있었던 동방 박사들로 하여금 먼저 찾아오게 하신 주님, 시므온과 안나처럼 늙어버린 저들에게도 잊지 아니하시고 찾아주신 주님, 오늘 이 외롭고 쓸쓸한 인생들을 찾아와 만나주실 주님으로 인해서 이 성탄절은 참으로 귀하고 복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