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게 하소서!(백낙원목사 출판감사예배)

2013-06-01 (Sat) 잠언 30:7-9

전대환 흥해제일교회

■ 성서 본문 주님께 두 가지 간청을 드리니, 제가 죽기 전에 그것을 이루어 주십시오. 허위와 거짓말을 저에게서 멀리하여 주시고, 저를 가난하게도 부유하게도 하지 마시고, 오직 저에게 필요한 양식만을 주십시오. 제가 배가 불러서, 주님을 부인하면서 ‘주가 누구냐’고 말하지 않게 하시고, 제가 가난해서, 도둑질을 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거나, 하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 ＜잠언 30:7-9＞ ■ 들어가는 이야기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는 일은 언제나 행복합니다. 특히 오늘은 ‘책’을 매개로 하여 함께 만났습니다. 우리 백낙원 목사님은 한평생 목회를 하시다가 명예롭게 은퇴를 하셨는데, 은퇴하실 즈음부터 시작해서 제 2의 인생을 사시는 것 같습니다. 백 목사님을 뵐 때마다 후배 목사들은 말합니다. “우리도 은퇴 후에 저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 월남 이상재 선생 저는 월남 이상재(1850.10.26.~1927.3.29) 선생을 침 좋아합니다. 어느 날 일본인인 오자키 유키오가 선생을 찾아왔습니다. 오자키는 일본의 저명한 정치가로서 일본 ‘의회정치의 아버지’로 알려져고 있었고 스물다섯 번이나 중의원 의원을 지냈습니다. 그는 일본 정가의 양심으로 통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오자키는 당시 조선의 민족지도자들을 두루 방문하던 중 월남 선생을 만나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고급 요정으로 선생을 초청했지만 선생은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사람을 보내 요정으로 초청한 일을 사과하면서 월남 선생 집으로 찾아뵙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선생은 그제야 승낙하셨지요. 오자키는 정해진 시간에 통역만 데리고 걸어서 가회동 언덕에 있는 선생의 납작한 초가집을 방문했습니다. 월남 선생은 그 때 일흔을 넘긴 백발이었습니다. 문간까지 나와 손님을 맞은 선생은 손님을 마당에 세워 놓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뒤 헌 돗자리 한 장을 말아서 팔에 끼고 나오며 말씀하셨습니다. “자, 우리 응접실로 갑시다.” ■ 무서운 사람 선생은 돗자리를 말아 들고 앞장을 섰지요. 집 뒤에 있는 산으로 올라가면서 손님을 돌아보았습니다. 한참 올라가자 아름드리 소나무 한 그루가 보였습니다. 소나무 아래에는 널찍한 바위가 있었는데, 선생은 그늘진 너럭바위 위에 돗자리를 폈습니다. 통역과 손님을 나란히 앉게 하고 선생은 아름드리 솔을 등진 채 꼿꼿이 앉았습니다. 두 사람의 얘기는 여러 시간 격의 없이 오갔습니다. 그 때 선생은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공동의 적으로 삼고 있는 일본과 투쟁할 것을 목표로 신간회를 조직하려는 중이었습니다. 선생은 조선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어른이셨습니다. 오자키는 일본에 돌아가서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조선에 가서 무서운 영감을 만났다. 돈이든 영예든 현실적인 이익에는 꿈쩍도 않는 지독한 민족주의자였다. 무엇보다 그가 나를 데려간 뒷동산의 몇 아름 되어 보이는 소나무 밑에 꼿꼿이 앉아서 일본의 침략을 꾸짖는 그의 모습은 한 마디로 존경스러웠다. 그는 세속적인 인간이 아니라 몇 백 년 된 소나무와 한 몸인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갈수록 그가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 목적에 짓눌리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 정동주, ≪소나무≫(기획출판 거름, 2000), 46-47쪽. ■ 백낙원 목사 저는 이상재 선생의 이 일화를 들으면서 백낙원 목사님을 생각했습니다. 두 분에게는 공통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두 분이 모두 민족을 사랑하신다는 점에서 그렇고, 둘째는, 두 분이 모두 연세가 드신 상태에서도 꼿꼿함을, 강직함을 잃지 않고 계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두 분 모두 청빈함을 큰 가치로 여기고 사신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백낙원 목사님은 10년쯤 전인 2004년에 첫 번째 시집을 내시면서 이런 시를 거기다 담으셨습니다. 그때 시집의 제목은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였고, 제가 기억하고 있는 시의 제목은 「주여! 이렇게 죽게 하소서」입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주여! / 이렇게 살고 / 이렇게 죽게 / 하옵소서. // 너무 일찍 요절하게도 마시고 / 남 도우며 살지언정 / 너무 오래 살아서 / 남의 짐이 되지도 말게 하소서.” － 백낙원, 「주여! 이렇게 죽게 하소서」 중. 백낙원, ≪내 영혼의 깊은 곳에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백낙원, 2004), 125쪽. 이처럼 백 목사님은 멋지게 사시는 분입니다. 말과 삶이 일치하는 보기 드문 어른이십니다. ■ 맺는 이야기 잠언의 말씀처럼, 허위와 거짓을 멀리멀리 두고 사시는 목사님, 부유함을 자랑으로 여기지 않으시는 목사님, 그렇다고 가난하여 남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늘 베풀며 사시는 목사님, 삶을 통하여 말없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목사님, 오늘 이 잔치의 주인공은 이런 백낙원 목사님과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후배 목사로서, 후배 문인으로서, 그리고 인생의 후배로서, 백 목사님의 삶을 닮고 싶은 마음에서 몇 말씀을 드렸습니다. ‘종심소욕이나 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인 연세에도 불구하고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하시고,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하시는 백낙원 목사님과, 목사님의 새 책 출간을 축하하며 주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 위에 하늘의 은혜와 땅의 축복이, 숨쉬기도 버거울 정도로 충만히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