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날, 새 아침(장영수목사 취임)

2013-04-07 (Sun) 시편 103:1-5

전대환 포항제이교회

■ 성서 본문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시편 103:1-5> ■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 우리는 포항제이교회가 새로운 담임목사님을 맞이하는 뜻 깊은 예식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일을 축하하고, 또 그 증인이 되기 위해서 이렇게 주님 앞에 한 자리에 모인 여러분 모두 위에, 그리고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위에 생명과 부활의 영이 세차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먼저, 장영수 목사님 같은 훌륭한 목사님을 모시게 된 포항제이교회 교우 여러분께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동시에 포항제이교회와 같은 좋은 교회로 오시게 된 장영수 목사님께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교회와 목사가 만나는 일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인연’(因緣)이지요. 제가 방금 ‘불교식’이란 표현을 썼습니다만, 이제 ‘인연’이라는 말은 누구나 사용하는 보편적인 낱말이 됐습니다. ‘인연’이라고 보통 붙여서 쓰지만, 사실 여기서 ‘인’(因)과 ‘연’(緣)은 개념이 조금 다릅니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열렸다, 할 때 사과가 열리도록 한 직접적 원인인 사과나무는 ‘인’입니다. 그런데 사과나무만 있다고 사과가 열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햇볕도 필요하고, 비도 필요하고, 그밖에도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필수적인 주변 환경을 가리켜서 우리는 ‘연’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인’이든 ‘연’이든 모두 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해서 포항제이교회와 장영수 목사님이 만났는데, ‘만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소통’(疏通)이지요. 그래서 이 시간에는 ‘소통’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 왜 대화인가? 오래 전 13세기 때 이야기입니다만, 신성로마제국에 프리드리히 2세라는 황제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한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인간의 본래 언어가 뭐냐, 하는 것을 알기 위한 실험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나라마다 언어가 다 달랐지요. 황제는 이처럼 언어가 나뉘기 전 ‘자연 그대로의 언어’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는 아기 여섯 명을 한 방에 넣어 놓고, 아기들을 키울 유모들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유모들에게 엄명을 내렸습니다. 아기들을 먹이고 재우고 씻기되, 절대로 아기들에게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상태에서 아기들이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언어가 어떤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황제는, 사람의 본래 언어가 그리스어나 라틴어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실험은 황제가 기대한 결과를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어떤 언어로든지, 말을 하기 시작하는 아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거기서 끝났으면 그래도 다행일 텐데, 여섯 아기들은 날이 갈수록 쇠약해지다가 결국은 모두 죽고 말았습니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이세욱 임호경 역),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주식회사 열린책들, 2011), 545쪽. 참 무모한 실험이었지만,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이런 겁니다. 젖과 잠만으로는 아기가 자라지 않는다는 것, 아기가 제대로 자라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통 곧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 좋은 대화 아기들뿐만이 아닙니다. 성인들도 대화가 단절된 상태에서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야생초 편지≫라는 책을 쓰신 황대권 선생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분이 이른바 ‘양심수’로서 감옥에서 독방 생활을 오래 하셨습니다. 감옥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독방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기서는 대화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옆방 사람과 큰소리로 대화를 하거나 간수 몰래 쪽지를 주고받기도 하지만, 원천적으로 대화가 차단된 곳입니다. 하루는 이분이 독방에 앉아 있는데 거미 한 마리가 눈앞으로 내려왔습니다. 그걸 손바닥에 올려놓고 10여분을 들여다봤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생명의 존엄함을 발견했습니다. 방 안을 다시 보았더니 파리, 모기, 사마귀, 송충이, 바퀴벌레, 쥐새끼, 구더기, 거기다가 온갖 미생물까지 눈에 뜨였습니다. 그는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선생은 그것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뭐 하러 왔니? 심심해? 그럼 나랑 놀자!” 하면서 중얼거리기도 하고, 팔을 갖다 대서 모기한테 피도 빨게 하면서 그것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 오랜 독방생활을 이겨냈습니다. 이겨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은 긴긴 수감생활을 통하여 자연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 최상의 대화 지지고 볶고 싸우든 어쩌든, 우리에게 대화의 상대가 있다는 것은 큰 행복입니다. 대화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그게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잠언 25:23에 보면 “북풍이 비를 일으킴 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참소한다는 말은 남을 헐뜯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다른 사람의 말 때문에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다짐을 합니다. ‘상처 받지 말자, 이해하자, 사랑하자, 인내하자…’ 하면서 말이지요. 그렇지만 그게 마음대로 됩니까? 그래서 잠언 18:14에서 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사람이 정신으로 병을 이길 수 있다지만, 그 정신이 꺾인다면, 누가 그를 일으킬 수 있겠느냐, 이겁니다. 상대방의 말 때문에 아플 때, 사람이 정신력으로 그것을 이겨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답은,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다시 봅시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편 103:3-5). 이보다 더 좋은 분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나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데도 힘을 써야 하지만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을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시편 118:8-9에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주님과 소통하는 것이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낫다, 권세 있는 높은 사람을 의지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 맺는 이야기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자연과도 소통해야 하고, 사람과도 소통해야 하고, 하나님과도 소통해야 합니다. 오늘 제 이야기를 마치면서 신동엽 시인의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새해 새 아침은〉이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새해 새 아침은 산 너머에서도 달력에서도 오지 않았다. 금가루를 뿌리는 새 아침은 우리들의 대화 우리의 눈빛 속에서 열렸다.” ― 신동엽(최성수 편), ≪선생님과 함께 읽는 신동엽≫(실천문학, 2004), 58쪽. 여기서는 “새해, 새 아침”이라고 했습니다만, 포항제이교회와 장영수 목사님은 ‘새해, 새 아침’이 아니라 ‘새 날, 새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새 날, 새 아침’은 산 너머에서도 오지 않고, 달력에서도 오지 않고, 취임식을 통해서도 오지 않습니다. 목사가 설교를 잘하면 ‘새 날, 새 아침’이 열릴까요? 교회가 담임목사님에게 사례비를 많이 드리면 ‘새 날, 새 아침’이 찾아올까요? 아닙니다. ‘새 날, 새 아침’은 장 목사님과 포항제이교회 성도들의 대화와 눈빛 속에서 열립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새 집으로 이사를 가면 ‘새 날, 새 아침’이 열릴까요? 가구를 새것으로 바꾸면 ‘새 날, 새 아침’이 찾아올까요? 아닙니다. 여러분 가정의 ‘새 날, 새 아침’ 역시 식구들 사이의 대화와 눈빛 속에서 열립니다. 사랑하는 장영수 목사님과 포항제이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복된 잔치에 초대되신 주님의 자녀 여러분! 우리가 모두 하나님 안에서 눈빛으로 서로 소통하게 되기를, 그리하여 우리 삶의 모든 현장에서 ‘새 날, 새 아침’을 열어가게 되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