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밤 바다’

박정철 (2013-01-12 20:47)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사람에 대하여 누구의 증언도 받으실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그가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셨음이니라’(요 2:23-25)   집안에서 쿵쾅거리는 아이들의 소리가 싫어서 무작정 바닷가로 향했다. 가고 싶어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좋기만 하다. 벤치에 앉으니 그 앞에 담배꽁초가 두어 개 떨어져 있다. 어떤 한 사람이 이 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잠겼을 텐데 그의 고민이 바닷바람에 다 날아가 버렸으면 좋았겠다.   늦은 밤 오늘 따라 날씨가 덜 춥다. 겨울이라도 이 정도 날씨라면 별 걱정 없이 보낼 수 있겠다. 워낙 이번 겨울은 초장부터 매섭게 시작하다 보니 오늘 같은 바다 바람은 충분히 맞아볼 만하다.   벤치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낮 동안 해변을 지키던 갈매기들도 밤에는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한 마리도 보이지를 않고 그저 파도만 소리를 내면서 쉼 없이 치고 있을 뿐이다. 여름에는 저 파도에 따라 움직이며 떠들썩하던 피서객들도 많았었는데 오늘 같은 겨울 밤 바다에는 아무도 같이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래도 파도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출렁거리고 있다.   혼자 있을 때 사람이 하는 것이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이란다. 여럿이 같이 있으면서 보여지는 모습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이다. 참 그럴 듯한 말인 성 싶다.   ‘그러면 난 어떤 사람일까’ ‘사람들에게 보여지려고 애쓰는 모습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여지지 않으려고 하는 나의 참 모습은 어떤 것일까’   오늘 겨울 밤 바다의 파도는 봐 주는 사람이 없는데도 쉼 없이 출렁이고 있다.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는데도 그 소리 한 번 낮추는 법이 없다.   그것이 바로 바다의 힘이겠다. 그 힘이 바로 바다로 썩지 않고 푸르러 생명의 충만함으로 넘쳐나게 하는 것이겠지. 겨울 밤 바다, 이 자리에서 나도 저 바다처럼 언제나 일렁거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