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의 고추’

박정철 (2014-07-12 12:59)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8)     7월, 무더운 여름날을 보내고 있다. 동네 방송에서는 연신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다면서 주의하라고 당부한다. 이 여름이라는 것이 만만하지 않아서 생각과 기운을 떨어뜨릴 때가 많다. 쳐지기 쉽고 미루기 쉬운 때다. 조금만 움직여도 흐르는 땀으로 인해 불쾌지수가 높아지기도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무더운 여름날에도 나무들의 잎사귀와 화단의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보게 된다. 마치 이 무더운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마냥, 비라도 한 바탕 쏟아지고 난 다음 날이면 그 자라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교회당 화단에 심어 놓은 고추를 따서 먹는다. 웬만한 큰 것들은 다 땄다 싶었는데, 다음날 주방에서 보니까 큰 고추들이 소쿠리에 담겨져 있다. 그래서 아내에게 물었다. “이 고추, 마트에서 사 왔느냐?” 했더니,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심어 놓은 데에서 따 왔지요.” 그런다. ‘아니, 어제 내가 딸 만한 것들은 다 땄는데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많이 자랐나.’ 싶은 것이 정말 거짓말 같다.   덥다고 쳐지기 쉬운 이 여름 때에 농작물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도전을 받는다.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다는 방송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자라고들 있는 모습을 보면서, 환경을 핑계 삼으려는 내 자신의 안일한 생각을 채찍질하게 된다. 한창 자라가야 할 시기에 안주해 버리려는 내 모습을 여름날 고추를 보면서 부끄러워진다.   방 한쪽 구석에 자라나는 아이들의 키를 재느라 몇 년 전부터 그어놓은 그래프 선들이 참 어지럽다. 그 한 선 한 선마다 온 가족의 희비가 담겨져 있는데, 기대와 희망과 함께 체념과 실망도 교차한다. 몇 달이 지나도 자라지 않는 모습에 한숨이 터져 나오기도 하고, 한 달 만에 불쑥 자란 모습에는 부푼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이 마음이 주님의 마음이겠다. 당신의 분량까지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 오직 사랑 안에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 어쩌면 천국의 한쪽 벽면에다가 내 신앙의 그래프를 어지럽게 그어 가시면서 한 자나 더 자라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계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