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장의 비애.

백낙원 (2011-06-18 15:07)

도살장의 비애.                                                 황우 목사 백낙원. 내가 자원은퇴를 한지도 8년이 되간다. 그 동안 소 세 마리, 말 한필을 기르고 있다. 이것이 내 전 재산이기도 한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부터 광우병수입쇠고기 파동으로 인하여 소 값이 반으로 내려 내 재산도 그만큼 반값이 된 셈이다. 지난겨울 전국적인 구제역으로 말미암아 350여만 마리나 되는 소, 돼지를 땅에다가 묻고, 온 국민이 큰 충격에 휩싸였었다. 그 안타까움이 아직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얼마 전 축산업협동조합(이하 축협)에서 한우암소 도태장려금 지급에 관한 안내문라는 우편물이 하나 날아들었다. 그 내용은 45개 월령 이하의 한우 암소를 도축시키면 두당 20만원의 장려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45개월 이하의 암소가 어떤 소인가? 이제 한창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암소를 의미한다. 그렇게 하여 개체수를 줄여 보겠다는 뜻일 것이다. 물론 축협이 전국의 사육두수를 파악하고 내린 고육지책의 일환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왜 그렇게 농가의 소 사육이 늘었는가를 먼저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의 현 사회, 정치구조가 무슨 농사를 해도 수지를 맞출 수 없는 공산품장려정책을 쓰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런 공문을 볼 때 앞으로 몇 년간은 소를 사육해 보아도 손해만 볼 것이 분명한 사실이기에 내가 사육하고 있는 30개 월령 암소 한 마리를 처분하기로 하였다. 이날은 그렇지 않아도 안개가 자욱하여 기분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정성스럽게 키워 온 암소를 도축시킨다는 것이 나를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다. 소 운반 차량에 소를 싣고 이곳 포항에서 김해에 있는 축산물공판장(이하 도축장)까지 길을 나섰다. 두 시간여 만에 도착은 하였으나 먼저 온 소들이 도축장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소들은 하나같이 좁은 차량에 묶인 채 굴신도 못하고, 이유도 모른 채 마냥 기다리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소는 눈물을 철철 흘리기도 하고, 어떤 소는 길고 긴 울음으로 장탄식을 내 뱉기도 한다. 그러다가 순서가 되면 속절없이 도살장 안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도 순순히 들어가면 그래도 맞지는 않지만, 발버둥을 치면 사정없는 채찍이 내려진다. 안을 들여다보니 오물로 질퍽한 바닥에 묶인 채 서서, 누구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지, 애타게 누구를 그리워하는지. 억울함을 하소연이나 하듯, 높고 낮은 목소리로 연신 울음을 내 뱉는다. 예리한 칼을 든 사내들이 좁은 골목을 오가고 피 냄새가 이슬처럼 천지에 덮인다.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려지는 황소이기를 원하여 내 호를 황우(黃牛)로 한지라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 아픔이 고스란히 내게 전율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우리 소도 마찬가지로 세 시간가량 대기 하였다. 편한 마음으로 자동차 좌석이나 대기소에서 기다릴 수도 있지만, 자리에 앉는다는 것이 어쩐지 우리 소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 같아, 나도 세 시간가량을 서서 서성이었다. 다리가 아프다. 짐승들도 마찬가지인가보다. 앉아 보려고 애를 써보지만, 나일론 줄의 위력 때문에 어쩌지 못한다. 어떤 소는 차에 오르내리다가 발목이 부러져 일어서지도 못하고 그 고통을 고스란히 삭이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주저앉은 소는 의사의 검사가 있어야하기에 오늘은 도살장에 들어갈 수 없고, 내일아침 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이 좋은 것일까 아니면 한시라도 빨리 도살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나은 것일까. 나는 소가 아니기 때문에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더디어 내 차례가 되어 우리 소를 마지막 이별할 시간이 왔다. 이미 체념을 해서인지 순순히 도살장으로 따라 들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눈에는 눈물이 고였고 두려움으로 몸을 떨었다. 옛날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은 사실상 도살장의 인부이기도 했다. 하나님께 드릴 소를 매일 잡아야 하고 각을 떠서 바쳐야 했기 때문에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목회자들은 도살장으로 끌려 들어가는 소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강단에 오른다는 것은 곧 도살되어 제물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강단 어디에 두려움이 있고, 경외심이 있으며, 어디에 가슴 무너지는 아픔과 슬픔이 있는가. 한국의 강단에는 적극적 사고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을 뿐이 아닌가. 언제 모세에게 자신감이 있었으며, 언제 적극적 사고로 충만하였던가? “보낼 자를 보내소서”가 모세의 진실한 고백이 아니었던가.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절구 했으며, 기드온은 “나는 제일 작은 자니이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의 강단에는 목회자가 제물이 되지 못하여 자기자랑만 난무하고, 공갈협박들이 난무하고 있지 않은가? 아주 오래되었지만 내가 “모모모 농군학교”에 입학을 했었다. 수업도중 교수가 “주님”이나 “하나님”은 뒷전이고 “내가” 무엇을 하고, “내가” 어떻게 했다고 수십 번이나 자기 자랑만 하는 것이 아닌가. 마지막 시간이 되어 설문조사를 한다기에 하나님은 간 곳 없고 자기만 살아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더니 나중에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대노하여 언성을 높이는 것을 보았다. 그럴거면 왜 설문조사를 했는지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중 하나다. 과연 “나라고 하는 존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주님도 “머리털 하나라도 희고 검게 하지 못한다고 하셨고, 일각이라도 목숨을 연장할 수 없다고 하셨지 않는가. 우리 한국의 교회와 주의 종들이 도살장에 들어가는 소들처럼 하나님 앞에서 경외심을 갖고 떨면서 강단에 올라야 할 것이다. 이런 경외의 자세가 우리 한국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개독교라는 지탄에서 벗어나 정말 생명의 종교로 거듭날 수 있는 유일의 길이라 여긴다. 샬롬.          (2011년 6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