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리그의 파이터(3)

이순락 (2015-03-22 13:08)

(5) 종태가 더욱 격분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다름 아니다. 그 깡패에게 당했다는  예쁜 검사요원 아가씨를 나에게 소개시켜 ‘학생의 애인’으로 만들어 주려고 했던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그 아가씨는 당시의 공장 근로자로는 드물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재원(?)으로 알려 졌었다. 실제로 그 아가씨에게도 나에 대한 자랑 같은 것을 말했다고 했었다. 단지 그 말은 사건이 있은 지 몇 달 후에 들었던 것이다. 아무튼 종태에게 물었다. “그 작자들이 주로 어디에 있는지 알아봐주소. 장소부터 알고 난 뒤 한 게임해야 되지 않겠소?”했다. “그건요 그럴 필요가 없심더. 글마들은 부암동 고개 골목에 주로 있으면서 영화보러 가는 우리들 돈 뺐고 그러잖습니까?” “아, 그럼 잘 됐네요. 전에도 언제 동식이가 돈을 뺏긴 일도 있다고 했지요. 그러면 다음 일요일 날 성지극장에 영화 보러 갈 때 만나면 손 봐도 되겠네요.” 그들을 일부러 찾아 갈 필요 없이 잘 됐다 싶었다. 공장에 다니는 청년들은 일요일이면 점심을 먹은 후 시내(서면) 쪽 동네 영화관에 영화 보러 가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영화를 보러 가면 좋은 점이 표 한 장 구입하여 동시상영이라는 2가지 프로를 감상 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동네 영화관은 대개가 그랬던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러 가는 길목이면서 동네 경계지점에 작은 고개가 있었다. 그 고갯길에는 만화방이며 막걸리집 따위도 있어 동네 아이들도, 어른들도 놀이터며 쉼터 구실을 하고 있기도 했다. 지금의 소방도로 보다는 약간 작은 폭 크기의 큰 골목이었고,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듯한 분위기를 가져다주는 그런 골목 고갯길이었다. 그 골목길엔 동네 깡패 녀석들이 항상 진을 치듯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대개 영화 보러 가는 근로자들을 붙잡아 ‘돈 좀 빌려다오.’하면서 가지고 있는 돈을 빼앗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엔 청년들 사이에는 청바지가 대단히 유행했었다. 그렇지만 그 청바지를 아무나 다 입고 있는 것이 아닌 비교적 있는(주머니 사정이 좋은) 사람만이 입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가 통 키타를 들고 ‘더 여엉 원 슈든비 어프레이드~’하면서 신나게 통 키타를 치는 그런 팝송이며 째즈가 유행하든 시절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깡패 녀석들이 자기들의 패거리 상징처럼 청바지를 즐겨 입고 있던 시대였다. 그래서 청바지를 입고 있는 사람이 지나가면 청바지를 입지 않은 한 두 녀석을 위해(?) 그들은 거의 두말없이 ‘바지 좀 바꿔 입자’하고 빼앗는 등 못된 짓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고갯길 골목을 녀석들은 어느 날은 저쪽 동네 깡패들이 지킬 때도 있고, 또 어떤 날은 본동(당감동) 깡패 녀석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녀석들을 만날 일요일이 자꾸만 기다려졌다. 작전연습 (1) 분명코 말 하건데 나는 깡패 두목(오야붕)이 되었다거나 또는 불순한 패거리를 조직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단지 깡패들 패거리 비슷한 모양이라 그렇게 오해받을 수는 있었지만. 달리 말해서 설혹 내가 깡패단을 조직했다고 하더라도 할 말이야 번듯하게 있다. 즉 고대 중국의 한(漢)고조 유방도 알고 보면 시정잡배의 패거리로 작은 조직의 두목출신이었다. 나로서는 길거리의 불량배들과 싸움도 벌이긴 했지만 내가 결코 나쁜 길에 들어서지는 않았음을 말하고 싶다. 단지 나쁜 녀석들을 싸움으로 제압하고 나쁜 짓을 못하게 계도 했던 것이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지 않은가. 종태를 비롯한 하숙생 근로자들이 퇴근한 어느 날 저녁이었다. 한쪽 방에 들어가 얘기를 꺼냈다. 종태에게 물었다. “김 형, 오늘도 그 검사원 아가씨가 결근했어요?”했더니 “예, 아직도 출근하지 않았어요. 근데 한 집에 사는 여공아가씨가 하는 말이 좀 찝찝하네요.”했다. “아니, 뭐가 찝찝하다는 거요?”했더니, “그 한 집에 산다(한 집에 보통 5~6개 자취방이 있었다)는 말분이라는 여공 말이 사고 난 그 날 밤에 크게 시끄러운 소리도 안 들렸다고 합디다. 그 날이 토요일이라서 검사원 아가씨 남동생인 학생(고1학년)이 자기 고향집에 다니러 갔고, 검사원 아가씨 혼자 자고 있었다고 하면서요.” “?!......” 스토리가 이상해서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종태가 말을 이었다. “직접 들어봐야 알겠지만, 뭔가 좀 이상합디다. 옆집 아가씨 말분이 말도 그랬지요만. 그 개새끼가 방에 들어갔다면 고함을 지르고 난리를 피워야 할 것 아닙니까? 근데 그런 걸 옆방에 있는 사람들도 몰랐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내가 그 말을 받아서 ‘그건 아니다’라는 투로 급히 잘라서 얘길 했다. “김 형, 그건 김 형이나 옆방 아가씨가 뭘 오해하고 있는 것 같소. 그 새끼가 칼이라도 들이댔다던지 아니면 황산이라도 쏟아 보이면서 협박하면 너무 겁을 집어먹고 소리가 나오겠어요? 생각 좀 해보소.”했더니, “아, 그건 학생 말씀이 맞네요.”했다. 그러면서 그는 혼자 지껄이듯이 중얼중얼 했다. “그 가시나가 말분이라 카디마는 진짜 말뿐이네...” “?!...” “근데 그 검사원 아가씨를 겁탈했다는 새끼가 도대체 어떤 놈인지는 알고 있는가요?” “네, 그건 다른 아가씨들도 아는 것이 그 새끼가 검사원 아가씨 남동생 학생의 고등학교 선배라고 하면서 몇 번 인가 자취방에 와서 귀찮게 했다고 합디다. 글마는 고등학교 입학해서 바로 퇴학당했다고 카는데요, 덩치가 큰 부두목 한다는 석찬이라는 새끼랍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