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박정철 (2011-09-24 06:10)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창 24:63-65)   코스모스로 가는 길에 한껏 들떠 있던 내게 해바라기가 눈에 들어온다. 저도 내가 자기를 본 줄 아는지 수줍은 듯 환한 미소로 반겨준다. 큰 키에 쭉 뻗은 몸매, 노란 꽃잎들과 푸른 잎사귀, 그리고 알알이 맺혀 있는 열매들까지. ‘해바라기는 참 좋은 것을 많이 가졌구나.’ 싶다.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이거다. 어느 것 하나 뒤질 게 없는 해바라기지만 살포시 고개 숙여 자기를 낮출 줄 아는 모습에서다. 큰 키와 가녀린 몸매에도 그리고 예쁜 꽃잎과 많은 열매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숙여 겸손을 보일 줄 아는 그 모습이 더 귀하게 다가온다. 모두들 높아지려고 애쓰는 이 시대 속에서 해바라기는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진 주님의 말씀을 받은 제자로 우뚝 서 있다.   그 해바라기를 보면서 이삭이 자기를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본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얼굴을 가린 말씀이 떠오른다. 처음 지아비가 될 이삭을 만나면서 아내 될 여인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가릴 줄 아는 리브가가 꼭 해바라기를 닮은 듯하다.   또 ‘주세붕’이 지은 ‘오륜가’는 어떠한가. ‘지아비 밭 갈러 간 데 밥고리 이고 가 / 밥상을 받들되 눈썹에 맞추나이다 / 친코도 고마우시니 손이시나 다르실까’ ‘ 아내가 남편이 밭 갈러 간 곳에 밥 담은 광주리를 이고 가서, 밥상을 들어 가지고 가는데 지아비의 눈썹 높이까지 공손히 들어 바칩니다. 남편은 진실로 고마우신 분이시니 삼가고 조심해야 할 손님을 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해바라기를 보면서 나도 해바라기를 닮았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을 가져 본다. 실력도 영력도 두루 갖춘, 믿음도 크고 열매도 많이 맺어내는 사람이어야 되겠다는 것과 아울러 그 무엇보다 나를 낮추어 겸손을 갖출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하늘 아래 세상의 모든 것에 고개 숙여 나를 낮추어 낼 줄 아는 겸손한 자로서 더 존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가을의 풍성함을 내게서도 누려갈 수 있겠다.   오늘 내게 큰 스승으로 다가온 해바라기가 이렇게 말씀하며 다가온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