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모심기 철에 느끼는 것

이순락 (2012-05-29 19:30)

들녘에는 지금 모심기로 한창 바쁜 시기다. 신문을 보니 경남 남해군의 마늘 축제장을 구경 온 외국인 관광객 여자 두 분이 바다와 어우러진 다랑논에서 황소 써레질을 체험하는 사진이 나왔다. 호기심에 찬 두 외국인 관광객의 얼굴과 황소의 듬직한 표정도 재미있어 보인다. 요즘은 들판에서 황소가 농부와 함께 써레질 하는 광경은 참으로 보기 드물다. 기계화된 농사환경 탓이다. 어느 날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필리핀 오지 산간벽지의 논농사를 짓는 특이한 모습을 보고 경탄해 마지않았었다. 그 유명한 ‘라이스 테라스’에 관한 것이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것인데, 경이롭고 아름다운 모습의 계단식 논, 그리고 농사짓는 방법이 대단히 특이했다. 깎아지른 절벽 같은 산에서 기계나 장비 없이 맨손으로 계단식 논을 일구고, 벼농사를 짓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수확 후 정미방법도 절구통에 넣어 찧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인력에 의한 방식으로 무공해 현미 쌀을 만드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아무튼 요즈음은 모심기에 바쁜 농사철이라, 농사짓는 우리 시찰 장로님들은 노회체육대회 때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왜 하필 바쁜 농사철에 그런 행사를 하여 참가하기 어렵게 만드느냐는 것이다. 분명 이유 있는 불만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앞으로는 시정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우리 지역은 농사, 특히 벼농사 짓기에는 축복받은 천혜(天惠)의 땅이다. 일 년 내내 한해(旱害, 가뭄피해)나 물난리 없이 농사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정착한지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여태껏 수해나 한재가 일어나 농사가 어려워진 일을 단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다. 펄S벅 여사가 쓴 대지(大地)를 보면 주인공 ‘왕룽’은 전형적인 중국의 농사꾼이다. 땅(농토)만이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요, 낙인 것이다. 그는 농사를 지을 때 거의 모든 중국인들이 그렇듯이 오직 하늘만 쳐다보고 농사를 짓는 것이다. 특히 가뭄이 심할 때는 폐농이 되어 극심한 기근에 고통을 당하는 모습이며, 그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 도회지로 가서 유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는가. 지금의 중국 농촌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우리 교회에서 ‘행복비타민’이라는 작은 책자, 월간지를 전도용으로 제작, 배포하고 있다. 내용은 매일의 말씀과 함께 예화 중심으로 되어 읽기에도 아주 편하고 좋다. 그기에 게재된 내용 하나를 소개하면 이렇다. 즉 위에서 언급한 소설 ‘대지’에서 나옴직한 이야기인 것이다. 중국의 유명한 전도자 ‘워치만니’라는 사람의 전도에 관한 예화다. ‘워치만니’는 농사를 짓는데, 양수기로 자기 논에 물을 가득 채워 모심기 준비를 했었다. 이튿날 논에 가보니 ‘아니, 이럴 수가?’ 세상에 자기 논에 댄 물이 쭉 빠져 아랫 논에 고여 있지 않은가. 물을 대느라 밤새 양수기를 돌리며 고생했었는데... 속에 불덩이가 치밀어 오르고,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물을 도둑질해간 논임자에게 달려가 당장에 요절을 내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니 자신이 이웃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 사람’으로 모두 알려져 있는 처지라 가슴을 억누르며 참았던 것이다. ‘하나님, 내가 참지요’하면서... -아마 우리들도 세상 살면서 한두 번쯤은 이러한 울화통 터지는 감정을 가져본 일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예수 믿는 죄(?)로 참아야지 하고 참는 경우 말이다- 그리고 그는 이를 악다물고 양수기를 다시 돌려 물을 가득 채웠던 것이다. ‘내일은 서둘러 모를 심어야지’하는 마음으로 위로하면서. 이튿날 논에 갔는데 ‘아니, 정말이지,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해. 이런 환장할 일이 있나 글쎄. 어제도 물을 도둑맞았지만 참고, 또 참았는데, 오늘 또 다시 이런 짓을 하다니...’ 당장 요절을 내고야 말겠다는 심사로 아랫 논임자에게 한걸음에 달려갔었다. 그 아랫 논임자는 엎드려 울듯이 빌며 사죄를 했었다. 죽을죄를 지었으니 면목도 없고 처분대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사실 저희 아랫 논임자가 하도 사정사정하며 살려 달라고 하기에 그 양반에게 물을 주다보니 그렇게 됐다”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마음이 아파 “앞으론 두 번 다시 그런 짓 하지 말라”고 훈계하고 돌아왔던 것이다. 하나님께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나님, 제가 잘 참고, 용서해줬으니 참 잘 했지요?’하는 마음으로 기도한 것이다. 그러나 어쩐지 계속해서 마음이 찜찜하여 밤새 잠을 설치며 지내는 중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감(靈感)을 주셨다. 즉, 용서 정도가 아닌 ‘크게 베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마음 다잡아 자신의 양수기를 아예 아랫 논에 가져가서 물을 마음껏 풀 수 있게 했던 것이다. 그랬더니 아랫 논과 그 아랫 논 사람 둘이 찾아와서 엎드려 절을 하며 감복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르신이 믿는 예수를 우리도 믿게 해달라고 하여 전도를 했다는 재밌는 얘기였다. 역시 전도는 사랑을 베푸는 것이어야 함을 깨우치게 했다. 워치만니의 이 이야기를 본 후 나는 소스라치듯 놀라서 ‘하나누리’재단에 작은 금전이지만 ‘북한 어린이 돕기’ 성금을 보냈었다. 말하기 차마 부끄러운 금액이지만 ‘베푸는 사랑’을 작게나마 실천하고 싶어서였었다. 금년엔 가뭄이 극심하여 북한 전역이 농사짓기에 어려움이 많다는 소식에 마음이 어두워진다. 예수님께서 북녘 땅에도 속히 찾아 가셔서 굶주림에 처한 저들 동포들에게 맛있는 생선과 보리떡으로 기적을 베푸실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올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2012.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