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십자가.

백낙원 (2007-08-22 12:29)

* 윤동주의 십자가                                                   황우 목사 백낙원.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시인은 27세 되든 해 1943년 7월 일본에서 교토대학에 재학 중 첫 학기를 마치고 귀향길에 오르기 직전, 7월 14일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교토 키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1944년 2월 22일 기소되고, 3월 31일, 일제 당국의 재판 결과 '독립운동'의 죄목으로 2년 형 언도를 받아 큐슈의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다음해인 1945년 2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윤동주가 사망했으니 시체를 가져가라"라는 전보를 받았으니 이 때 동주의 나이 겨우 29세였고 해방되기 6개월 전이었다. 더디어 3월 초, 중국 길림성 용정 동산에 안장되었다. 우리는, 아니 나는 이러한 절박한 시대상황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동주의 시를 고스란히 이해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라 여긴다. 때로는 시인이 의도하지도 않는 엉뚱한 이해를 하는 것이 아닐까하여 송구스럽기 그지없다. 특히 동주 시인의 십자가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시란 지금 읽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오늘의 시대적 정황은 동주 시대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시인은 비록 감옥에 갇혀 있는 몸이긴 하지만 쫒아오는 햇빛 즉 해방의 여명이 밝아 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들은 종탑 높이기에 급급하고, 교회로서의 사명을 잊은 채 안도의 숨을 내 쉬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여명은 밝아 오는데 교회가 거기에 부응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십자가에 걸렸다고 표현했고, 교회들이 동양 제일, 세계 제일 등 첨탑 쌓기에 혈안이 되어 있음을 한하고 있는 것으로 여긴다.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마땅히 기쁨과 환희, 그리고 희망의 종소리가 들려와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그 종소리는 울리지 않아 애간장이 탄다. 그런데 손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감옥이라는 공간속에서 한가하게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한심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뒷짐 지고 체념상태에 빠져 있는, 아니 오히려 일제에 동화되어가는 교회와 우리 민족을 힐책하는 것이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괴로웠던 사나이인 동주는 감옥에 구금되어 있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또 다시 자기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응하면서, 순순히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29세의 젊은 피를, 어둡기만 한 이 조국하늘 아래, 누가 알아주건 말건 조용히 흘리겠다는 각오와 결단이 내포된 것이다. 이로 보건데 동주만큼 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그의 “십자가”란 이 시가 그런 그의 의지와 신앙과 사랑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동주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처럼 되기는 어려워도 그를 닮으려고 애썼던 시인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동주는 확실히 요즈음 말하는 운동권에 속한 학생은 아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그 시대적인 고통을 한 몸에 짊어지고 아파하면서도 사랑과 인내로 참고 견디며 극복하려 하였던 사람이었고, 이론의 사람이 아닌 행위의 사람이었다. 오늘날에도 그렇다. 요즘 대선이 가까워지고 있는 현금(現今), 자기가 당선이 되면 종이 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어도, 실제로 십자가를 지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 감투를 쓰려고 하는 사람은 많아도, 모가지를 이 민족 앞에 드리우는 사람이 없다. 나라를 사랑한다는 사람은 있어도, 어둔 이 하늘 아래 조용히 피를 흘리겠다는 각오를 가진 사람이 없지 않는가. 오호라 통재(痛災)로다. 주여! 예레미야 같은 눈물의 선지자, 여호수아 같은 믿음의 지도자를 보내 주시옵소서.              (2007년 들가을달 스무이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