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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머슴은 주인 마음을 읽으라!

전대환 (2008-06-09 23:48)

이명박 당선자는 지난해 12월 20일, 국립 현충원 방명록에다가 “국민을 잘 섬기겠습니다”라고 썼다. 자세가 참 좋았다. 서울시장 시절부터 머슴이 되겠다는 말도 자주 했다. 자신뿐 아니라 공무원들에게도 머슴이 될 것을 요구했다. “말은 머슴이라고 하면서 과연 국민에게 머슴 역할을 했느냐?” 지난 3월, 기획재정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공무원들을 질책한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 질문을 국민이 대통령에게 던지고 있다. 주인이 잔뜩 화가 났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 본인은 머슴 노릇을 충실하게 하고 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지금 주인은 머슴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문제는 진정성이다. 진정성은 말과 행동이 일치할 때 확보된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과 행동은 아직도 따로 놀고 있다.

서민의 살림살이를 챙기겠다고 하면서 짜놓은 진용은, 전혀 서민의 살림살이를 이해할 것 같지 않은 ‘강부자’ ‘고소영’ ‘S라인’이었다. 사교육비를 줄여주겠다고 하면서 내놓은 교육정책은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기는 것들뿐이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살리겠다고 말하면서 대기업에 유리한 정책들만 쏟아내 놓고 있다. 친환경을 말하면서도, 틈만 나면 강에다가 시멘트를 바르겠다며 운하 이야기를 꺼낸다. 국민과의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경찰은 평화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했다. 법과 질서를 외쳐대면서도, 법률로 정한 각종 기관장들의 임기를 무시하고 그들을 몰아내느라고 갖가지 수단을 동원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과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정부의 거짓말이 여럿 드러났다. 이런 일들을 두고 대통령을 못 믿겠다고 몰아붙인다면 대통령은 억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상머슴과 수하머슴들의 손발이 안 맞는 것은 주인 책임이 아니고 상머슴의 책임이다.

그러면 왜 이렇게 머슴들이 서로 손발을 못 맞출까. 상머슴의 생각이 갈라져 있을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성경에 보면 예수가 이런 말을 했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떠받들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누가복음서 16:13). 머슴이 한 집에 몸담고 있으면서 옆집 주인까지 동시에 섬길 수는 없다. 제 주인의 말보다 옆집 주인의 말에 더 신경을 쓰는 순간, 그의 모든 삶에 혼란이 밀어닥친다. 거짓말도 더 늘게 된다. 지금 주인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민의 머슴인지 미국 축산업자들의 머슴인지 헷갈려 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때문에 단단히 뿔이 난 주인이, 당장 협상을 다시 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런데 머슴은 국가 신뢰도에 문제가 생긴다, 무역 보복이 염려 된다, 하며 아직까지 변명을 멈추지 않고, 뭔가 좋은 수가 없을까, 묘수만 찾는다. 요즘 말로 ‘오버’다. 머슴은 주인 말을 들으면 그만이다. 그 다음 책임은 주인이 진다.

노무현 ‘씹는’ 것이 ‘국민 스포츠’이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것은 몰라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서만은 ‘노무현만큼만 해라’ 하는 것이 대세다. 미국산 쇠고기에서 나온 뼛조각 몇 개 때문에 시끄러웠던 게 엊그제이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적어도 노무현 전 대통령은 ‘두 주인’을 섬기지는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상머슴이 두 주인을 섬길 때 가장 흔히 나오는 현상은 거짓말이다. 얼마 전 여당의 한 국회의원이, “지금 (쇠고기 정국에서) 국민들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권위 있는 단체의 말보다는 일부 주부협회에서 나오는 감성적인 이야기를 더 믿는다”라고 말했다가 주부들의 눈총을 받은 적이 있다. 그가 보기는 제대로 봤다. 국민들이 주부들의 말을 더 믿는 것은, 주부들은 거짓말쟁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대한민국 국민은 한두 번 속아주는 ‘점잖음’은 가졌지만, 계속 속는 ‘바보스러움’은 벗어버린 지 오래다.

일 조금 못하는 머슴은 용서할 수 있어도, 거짓말하는 머슴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 주인의 마음이다. 위기에 몰린 머슴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진짜’ 주인의 마음을 읽고 그 말만 따르는 것이다.

(2008.6.9 내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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