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앞에서

박정철 (2012-03-31 10:1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 19:30)   올해도 교회당 앞의 정원에서는 동백꽃이 피어나고 있다. 봄에 피어나는 그 어떤 꽃들도 다 입 맞추고 싶듯 아름답고 예쁘기만 한데, 싱그러운 봄 햇살을 듬뿍 받으며 마음의 정원에서도 봄꽃들로 피어오르고 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우리의 마음을 녹여주는 그 꽃들로 인해서 행복이 별거냐 싶어진다.   한 번은 대학 교수님께서 “만약에 꽃들이 형형색색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을 설명할 수만 있다면 나는 진화론을 따를 것이다.”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이 난다. 하나님의 창조 솜씨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꽃잎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냐는 것이다. 이제 또 얼마 있지 않으면 진달래와 개나리, 그리고 벚꽃들로 봄의 향연은 계속될 것인데….   동백꽃 앞에서 주님을 본다. 사순절기가 계속되는 이 날에 주님 묵상하며 동백꽃 앞에 서 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그 피처럼 동백꽃잎이 붉디붉기만 한데, 이제 이 동백나무의 꽃들도 흘러 떨어질 때가 오겠지. 성 금요일에 맞춰서 그 꽃들이 떨어질 것만 같은데.   매년 동백꽃을 볼 때마다 늘 애타던 것은 다른 꽃들과는 달리 꽃봉오리가 통째로 떨어뜨려진다는 것이다. 다른 꽃들의 꽃잎들은 한 잎 두 잎 지면서 그 여운을 그나마 가져가게 하는데 이 동백꽃은 송두리째 떨어지면서 더 이상의 미련도 애잔함도 가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서글퍼지는 꽃이다. ‘뭐 이런 꽃이 다 있어,’ ‘이렇게 처절하게 질 것이면 예쁘게나 피지 말지.’ ‘이렇게 처참하게 떨어져 버릴 것이면 작게나 피어날 것이지.’   동백꽃 앞에서 공생애 3년 동안 그 호탕한 웃음으로 이 세상을 넉넉히 살아가셨던 주님을 떠올려본다. 불처럼 뜨겁게, 바람처럼 자유로우며, 물처럼 유유자적하셨던 주님. 강한 자에게 강하면서도 약한 자에게 한 없이 약해지셨던 그 주님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100년이고 200년이고 사셨으면 더 좋았을 것을 딱 그렇게 공생애 3년, 33살의 나이에 불에 살라지듯 바람에 날려버리시듯 물에 흘러가시듯 십자가에 온 몸을 송두리째 던지시고는 그렇게 가버리셨다. 동백꽃이 떨어지듯 그렇게 가버리셨다. 그렇게 사는 것이 삶이어야 한다는 것과 그렇게 하는 것이 참 사랑이라는 것을 일러주시듯 말이다.   동백꽃이 교회당 앞에 붉게 피어 있다. 이 꽃이 뚝뚝 떨어지는 그 날에 송두리째 인류를 위해 당신의 몸을 내던지신 주님을 기억하며 부족하지만 나 또한 몸뚱이를 붓으로 세워 하늘의 뜻을  써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