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감정이라는 홍역.

백낙원 (2009-01-08 20:12)

* 연애감정이라는 홍역.                                               황우 목사 백낙원. 내가 어릴 때는 어른들로부터 조숙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초등학교 6학년 때 한바탕 연애감정으로 몸살을 앓았다. 다른 학교에서 전학을 온 여학생이 양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그 여학생을 “양복쟁이”라고 부르며 놀려댔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왠지 나는 그 여학생을 놀리지 못했다. 아마 그 “양복쟁이”를 좋아한 것 같다. 하루라도 그녀를 만나지 못하면 좀이 쑤셨다. 행여나 만날 수 있을까하여 그 집 쪽으로 돌아서 길을 가기도 하고, 그녀가 듣도록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우리 집 근처에 있는 우물에 그녀가 물 길으려 나오는 시간을 맞춰 물을 길으러 가지만, 정작 만나고 나면 낯만 붉히고 돌아올 뿐 아무 말도 못했다. 만나고 싶고 보고 싶어 학교에 가는 일이 즐거웠다. 그리고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했다. 나는 특히 과학을 잘했기 때문에 “과학자”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던 터라 과학시간만 되면 우쭐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났다. 그러는 사이 그녀에게 향한 연애감정은 차츰 식어지기 시작하였고, 고등학생이 되고부터는 다른 여학생을 마음에 두기 시작했다. 편지를 써가지고 다니다가 전하지 못하고 찢기를 수차례 끝내 사랑을 고백해보지 못했다. 때로는 방학 때 먼 친척집이라도 가는 때이면 아무도 몰래 이불 뒤집어쓰고 눈물 흘리며 소리죽여 울기도 했다. 그러다가 집에 오면 그녀와 가까운 하늘아래 있다는 안도감에 행복한 잠을 청하곤 했다. 그러다가 군에 입대를 하게 되었고, 전라도 광주에서 군복무를 할 때 군민(軍民)합동교회를 다녔는데, 어떤 아가씨로부터 열렬한 연애편지를 받기 시작했다. 제대를 하고 집에 와 있는데도 하루가 멀다고 편지가 왔다. 같은 내무반의 동료들이 간곡히 부탁하기를 “그 아가씨가 미칠 것 같으니 한 번만이라도 만나 주시라”는 것이었지만 단호히 거절하고 수십 통의 편지를 고스란히 돌려보내고 말았다. 그 후 그 아가씨는 단념을 했는지 소식을 끊었다. 그 후 얼마를 지났는지 모르지만 어느 때는 묘령의 이웃의 아가씨가 “나는 어쩌라고”하면서 매달리고 온갖 애교를 다 부렸지만 나는 돌부처였다. 어느 날 밤이었다. 또 다른 아가씨가 내게 매달리며 “나를 죽여 달라”고 애원했다. 그래서 그 아가씨를 매달고 3Km가 넘는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지만 손목을 단단히 잡고 계속해 산길을 올라갔다. 그 아가씨는 정작 나의 과감한 행동에 질려 있었고 두려워하는 눈치가 역역했다. 드디어 뒷동산 산 정상에 다다랐다. 그 곳은 내가 수없이 자주 올라 “나 목사 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했던 곳이고, 목사가 될 야망을 키우며 나중에 할 설교를 위해 웅변연습을 했던 곳이다. 그 정상에는 이 동리 사람들이 천지신명께 제사를 드리던 곳으로 돌로 된 제단상이 있었다. 그 돌제단상에 그 아가씨와 같이 마치 제물이 된 듯 올라앉아 두 손을 맞잡고 그 아가씨와의 관계가 건전한 관계가 되기를 간절하게 기도하였고, 그 가정과 그 아가씨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다. 그 아가씨는 그저 눈물만 펑펑 쏟고 있었다. 그 이후 얼마 있지 않아 나를 오빠라고 부르며 따르던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였고, 그 사춘기 때 연애감정을 느꼈던 아가씨들도 짝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 후 지금까지도 그 아가씨 부부와 우리 가족은 자주자주 만나기도하고 수년간 매년 수백만 원 상당의 영양제를 보내오고 있다. 이렇게 그 아름다운 교제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분들도 있지만 영영 소식을 들을 길 없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행각을 보면 너무나 육적으로만 치우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너무나 쉽게 핸드폰 문자하나로 만났다가 전화 한 통화로 헤어지는 이상야릇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 연애감정! 이 묘한 감정 때문에 역사가 창조되고 그리고 여기서 실타래가 꼬여 일생을 망치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며, 여러 가지 복잡한 인생문제가 생기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 때 연애감정으로 홍역들을 치른 그 아가시들은 모두 어느 하늘 아래서 그 누구와 사랑을 하고 사는지 모를 일이다. 이제 황혼을 바라보는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또 그 아들딸, 손자 손녀들도 우리와 같은 홍역을 앓고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되돌릴 수 없는 그 시절을 아쉬운 듯 회상해 본다.            (2009년 1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