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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시대'에 살아남기

전대환 (2008-10-21 10:55)

'분노의 시대'에 살아남기

전대환 (대구참여연대 공동대표, 구미안디옥교회 목사)

우리는 지난 몇 주간, 안타까운 일들을 많이 겪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연예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그 가운데서도 한 인기 여배우의 자살은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싸이게 했다. 연예인들 기사에 묻혀서 그렇지, 돈 때문에 자기 목숨을 버린 서민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결코 그에 못하지 않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여러 사람들이 원인을 분석하고 처방을 내놓고 있지만, 가장 고개가 끄덕여지는 원인은 ‘분노’인 것 같다. 마음속에 분노가 일면, 극단적인 경우에,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생각이 일어난다. 차마 남을 죽일 수는 없으니까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이 ‘자살’ 아닐까?

요즘처럼 서민의 마음속에 분노가 들끓는 시대가 또 있었던가 싶다. 아내나 남편에 대한 분노, 이혼한 전 배우자에 대한 분노, 자식들에 대한 분노, 아픈 마음을 잘 헤아려주지 않는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분노, 정치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 국제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노, 까닭 없이 악성 댓글을 써대는 일부 네티즌들에 대한 분노…. 우리 속에서 분노를 없애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용서’일 것이다.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 예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 고대사회에서 ‘일곱’이란 숫자는 ‘완전한 수’인데, 그것에다가 또 완전한 숫자인 열을 곱하고, 거기다가 일곱을 한 번 더 곱하여 용서하라고 한 것이니까, 완전히, 끝없이 용서하라는 말일 것이다. 구약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백성들을 용서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하나님의 용서는 사람들이 뭔가 별나게 바뀌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 스스로 마음이 허락하지 않아서였다. “내가 너를 용서한 것은 너 때문이 아니다. 나의 거룩한 이름을 속되게 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한 것일 뿐이다.” “내 이름 때문에 내가 분노를 참고, 내 영예 때문에 내가 자제하여, 너를 파멸하지 않겠다.”

용서는 남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을 용서한다는 말에는 좀 문제가 있다. 상대를 용서한다는 것은 나는 잘했고, 너는 잘못했으니 잘한 내가 잘못한 너를 용서한다는 이야기인데, 그것은 상대를 무시하는 말이고 상대의 인격에 대한 모욕일 수 있다. 그래서 불교에는 ‘용서’란 말을 잘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원망하며 싸우라는 말은 물론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상대가 아무리 죄를 많이 지었다고 생각돼도, 그 사람을 부처님같이 존경하라고 불교에서는 가르친다.

나에게 해를 끼치고, 악다구니를 써대는 사람을 내가 존경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존경까지는 나중에 하더라도, 우선 내가 먼저 살고 봐야 한다. 분노를 가슴에 품고 살면, 그 분노가 상대방에게 가기 전에 내가 먼저 죽거나 상한다. 바비 샌더즈가 이런 말을 했다. “분노를 고집하고 복수를 꿈꾸는 것은 당신 자신이 쥐약을 먹고 쥐가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똑같다. 분노는 분노의 대상이 아닌 당신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며 당신의 매력과 건강과 행복을 조금씩 갉아먹고 몸은 물론 영혼까지도 죽일 수 있다”(바비 샌더즈, ≪돌고래에게 배운다≫). 집에 불이 났을 때, 틱낫한 스님은 강조하듯이, 누가 불을 냈나, 화재의 원인이 뭔가, 그런 것은 나중에 알아봐도 늦지 않다. 우선 불부터 꺼야 한다. 우리 안에 생기는 분노는 마음의 불이다. 얼른 끄고 봐야 한다. 그것이 용서이다.

환율 때문에 손실을 입었든, 펀드나 주식을 사서 손해를 봤든, 직장 문제나 사업부진으로 열을 받았든, 사람 때문에 불이 났든, 가슴속에 혹시 조그마한 분노라도 있다면 지금 즉시 꺼야 한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든, 그가 뭐라고 하든, 이유 불문하고 무조건 꺼야 한다. 일단 꺼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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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8.10.15(수)일치 석간 내일신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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