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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신학공개토론과 나의 신앙고백.
백낙원 (2007-07-06 20:46)
* 도올의 신학공개토론과 나의 신앙고백.
                                                        황우 목사 백낙원.
먼저 부족한 사람이 대 학자인 도올 김용옥 교수의 주장에 대하여 어떻게 감히 가타부타 할 수 있겠는가마는 도올의 주장은 우리 기독교의 전통신앙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 필을 들었다.
40여 년간 목회를 한 사람이요, 70평생 예수를 믿어온 사람인데 그럼 나의 신앙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도올과 신학적 논쟁을 하자는 것이 나의 본의도 아닐 뿐더러 할 수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시골 교회 목회자였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내 신앙에 입각하여 나의 소신을 피력하는데 의미가 있다. 지금이라도 나의 신앙이 잘 못된 것이라면 바로 잡아야 구원받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기에 신앙 고백적 차원에서 이 글을 쓴다.

1. 인간도 100%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요?
* 도올 : 도올은 “저도 (예수의) 인성과 신성을 다 100%씩 갖고 있다고 인정하지만 (예수뿐 아니라) 인간도 100%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요한복음의 하나님은 인격체가 아니라 진리로서의 하나님이이서 깨달을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을 100%로 본다.

* 황우 : 그럼 도올이 하나님이라는 말 아닌가? 동학(東學)의 교주인 손병희(孫秉熙)가 내세운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사상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인간도 100%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허물어 버리는 바벨탑적 사고가 부활한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2. 구약 폐기론(廢棄論)은 온당한 발언인가?
* 도올 : 그리고 기독교는 출발부터 유대민족의 율법주의를 거부했다. 어떠한 종교도 율법주의를 거부하지 않고서는 위대한 종교가 될 수 없다. 공자도 기존의 의례(儀禮)의 권위를 거부한 사람이었고, 불타도 베다의 권위를 거부했다. 기독교가 이제 와서 구약적 율법주의를 직접적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유대교의 아류일 뿐 기독교가 아니다.

* 황우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에서는 물론 율법에서까지도 자유를 얻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약의 뿌리는 구약이다. 그렇다면 구약은 우리 개신교에 있어서도 보이지 않는 뿌리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말이다. 그렇다고 율법주의에 빠져 서는 안 되겠지만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마저 버려서야 되겠는가.
예수님도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하셨지 않은가.

3. 도올은 종교다원주의자가 아닌가?
* 도올 : 교회운동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배타성(exclusiveness)이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교리 이외의 어떠한 종교적 신념도 다 배제하고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교리라는 것은 대부분 후대의 역사적 정황 속에서 형성된 것이며 성서적 근거가 박약하다. 이것이 조직신학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독교의 배타성도 유대인의 다이애스포라와 유사한 피 박해집단의 역사적 특수상황에서 비롯된 아폴로제틱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이 곧 기독교의 본질은 아니다.
오늘 여기에서의 나의 실존을 생각할 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공동체는 기독교라는 교리집단에만 국한될 수는 없다. 유교, 불교, 천도교, 원불교, 토속 서낭당 무교, 이슬람, 여타 다양한 종교 신념 체계와의 공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들 모두가 인간 내면의 고독(solitude)을 해결해가는 나름대로의 방식을 보유하고 있다. 만약 한국의 기독교가 이러한 공존을 배제하는 독존만을 고집한다면 나는 그러한 기독교에는 일순간도 나의 에너지를 할애할 수 없다.

* 황우 : 도올의 주장은 토속 서낭당 무교나 이슬람까지라도 구원이 있다고 보는 것 아닌가. 인간 내면의 고독을 해결해 가는 나름대로의 방식만 있다면 그 어떤 종교라도 좋다는 논리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도올은 종교다원주의자임에 틀림없다.
도올이 구약을 폐기 하더니『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는 말씀과 신약마저 폐기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4. 성서가 정본이 아니라면 무엇이 정본인가?
* 도올 : 기독교는 2천 년 동안 서서히 형성되어온 것이다. 이 말은 곧 어느 한 시점에서의 기독교의 모습이 기독교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형성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1세기의 기독교, 4세기의 기독교, 16세기의 기독교, 21세기의 기독교가 모두 동등한 자격을 지니는 기독교일 뿐이다. 성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한 시점에서의 성서의 정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황우 : 현재의 기독교가 완성되어진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도올의 주장대로 “형성되어져 왔고 또 형성되어져 간다.”면 바람의 방향에 따라 수시로 모양을 바꾸는 하늘에 뜬구름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성서도 그렇다. 성서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나, 성서가 기독교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면 그럼 도올의 신학이 기준인가 묻고 싶다.

5. 신비를 다 이해 한다고 믿는 도올이 과연 신앙인인가?
* 도올 :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는 “믿음”은 간편하고 또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위태롭다. 나는 이러한 합리화가 인간의 보편적 이성의 자유로운 지식의 장 속에서 무전제적으로 다시 소통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것을 거부하면 그것은 “천박한 독단”일 뿐이다. 현대시민사회에서 독단을 중세세기방식의 도그마틱스로서 유지하려는 것은 “사기꾼들의 횡포”에 지나지 않는다.
21세기의 종교가 “이해 없는 신앙”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양아치적 권위의식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시민사회의 논리에 의하여 무기력하게 될 뿐이다.
나의 “이해”가 많이 대중에게 읽힐수록 21세기의 한국기독교는 희망이 있다. 성서는 이제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다. 이해 속에서 우러나오는 믿음만이 21세기를 버텨낼 수 있다.
(* 원로 신학자 김광식 박사(전 연세대 교수)가 그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김 박사는 ‘믿음’보다는 ‘이해’를 강조하는 도올의 주장을 두고 “설교자의 목적은 신자들을 지혜롭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게 하려는 데 있다”며 “(도올과 같은 주장은 이미) 독일의 칸트와 18~19세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에도 있었다”고 말했다.
  
* 황우 : 도올이 오늘날 추종을 불허하는 학자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성서의 신비들을 다 이해 한다는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성서의 신비는 이해해야할 것이 아니라 믿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목회자들이 이 “오직 믿음”을 강조하는 것을 “천박한 독단”이요, “사기군의 횡포”요, “양아치적 권위의식”이라한다면 도올이 과연 신앙인가 말이다.
그리고 자기가 쓴 “이해”가 많은 대중에게 읽힐수록 21세기 한국기독교가 희망이 있다고 했는데 그럼 성서를 읽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다는 말인가?

6. 신앙을 전제로 하지 않는 신학이 무슨 소용이라는 말인가?
* 도올 : 교회는 신학자들의 신념이나 언어체계를 컨트롤해서는 안 된다. 교회라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 관심이 신학의 자유로운 개화(開花)를 질식시켜서는 아니 된다. 모든 교회는 훌륭한 신학자를 양성하는 데 교육장학금으로서 최소한 십일조를 내어야 한다. 그것은 교회 존립의 이유며 양식(良識)이며 의무다. 그리고 교육헌금에 대하여 일체 이념적 클레임을 해서는 아니 된다. 한국교계의 생명력은 오직 자격 있는 신학자와 수준 높은 목회자의 양성에 있다고 나 도올은 굳게 믿는다.

* 황우 : 신학은 결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다. 신학과 신앙은 상호 보완적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신학자는 그 누구도 컨트롤해서는 안 되는 존재이고, 교육헌금도 클레임 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이는 마치 브레이크가 없는 기관차가 되고 말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수준 높은 목회자를 양산하자는 데는 의의가 없지만 도올과 같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적 신학자를 양성하는 데는 귀한 헌금을 한 푼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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