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 리그의 파이터

이순락 (2015-03-02 17:04)

*글 머리에~ 이하의 단편소설 '마이너 리그의 파이터'는 저의 청년시절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구성해 본 그야말로 '소설'입니다. 어쩌면 중학교 학생 수준의 글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옛일을 추억하며 늙어가는 어느 촌로의 드라마틱한 회고담이려니 하고 재미삼아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이너 리그의 파이터'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정통한 무술을 수련한 제도권에서의 파이터가 아니라 뒷골목 내지 이 사회의 음지의 한켠에서 일어났던 동네 주먹들의 자잘한 얘깃거리라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진심으로 송구하옵기는 신앙적 요소가 전혀 가미되지 않은 내용이고, 또 거의 육두문자를 옮긴 것만 같아 일면 부끄러움도 큽니다. 부디 독자님들의 넓으신 아량으로 용서해 주시길 빕니다. 마이너리그의 파이터 ~동네 주먹도 정의는 있다 1972년 부산의 음지 당감동 (1) “학생요. 이런 억울할 데가 어디 있습니까요. 참으로 분통 터져 미치겠습니다.” “아니, 무슨 일 이길래 그캅니까? 말 좀 해보소.” 나의 대답과 다그치는 말에 종태는 물부터 한 사발 들이켰다. “학생이 알듯이 내가 공장에서 생산반장이잖아요. 그런데 우리 반에 검사업무를 굉장히 잘하는 아가씨가 있거든요. 그 아가씨가 뭐 동네 깡패놈 새끼에게 당해서 회사출근을 안하고 있어요. 그래서 일이 진행이 잘 안되어서 내가 계장님께 X나게 깨졌거든요.” 속으로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재미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재미란 다름 아니라 그 깡패란 녀석을 붙잡아 두들길 일을 생각했기 때문이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깡패 놈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이 아무게는 X도 아니다.’는 울분마저 치밀어 올랐다. 뒤에 이야기를 들어 본 즉, 그 아가씨란 사람이 인물도 꽤 곱상하다고 했다.  경남 밀양 출신으로 고등학교 1학년 다니는 남동생과 자취하며 회사 다닌다고. 미모 못지않게 일을 재간있게 잘 처리하여 종태의 작업반이 ‘우수반’으로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아가씨의 업무가 중요한 품질검사업무 담당이라고 했다. 그 아가씨가 출근하지 않고 있으니 딱한 형편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나로서는 이런 저런 상상들을 하면서도 종태에게 시치미를 뗐다. “근데 김 형, 내가 뭐 어떻게 할 수 있겠오? 요사이 아랫동네 애들 이야기는 종종 들어 보고 있습니다만, 내가 그 작자들과 관계하는 것도 아니고...” 종태가 답답한 듯이 다그치듯 말했다. “아니, 학생 그런 말 하지마소. 글마들 몇 놈 쯤은 학생 혼자서도 간단히 조질 수 있잖아요.” 종태는 아마 나의 주먹(?)을 철석같이 믿는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장 근로자의 한 사람으로서 특히 깡패 녀석들에게 당하는 억울함과 이를 분풀이로 갚아야 겠다는 결심은 한으로 맺힌 듯 했다. 그들에게 사실 유일한 해결책은 싸워서 녀석들을 제압하는 길 뿐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요원했던 것이다. 깡패들과 싸워서 그들을 제압한다는 것은 가히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과 같을 정도의 도박인 것이기 때문이다.   (2) 나는 당시 군에서 1년 정도 복무하다가 의가사(부선망 4대 독자 양자입적) 제대를 하였다. 복학 전이라 직장을 구하려했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몇 달째 실업자 신세로 지내면서 하는 일 이란 것이 오직 운동만 할 뿐이었다. 1970년 대 초반 제1차 세계오일쇼크가 일어난 시기였으니까 직장 구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었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신문을 보고 찾아갔던 곳은 목재소였다. 수입원목을 사람 넷 또는 7~8명이 목도를 하며 대형 기계 톱날에 재제하는 일을 하는 그런 일이었다. 나에겐 도저히 맞지 않는 일이라 딱 하루 출근하고 그만두었던 것이다. 그 뒤로는 그런 일조차 사람 구한다는 광고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부산 서면 범내골 쪽에 있는 ㄱ권투도장에 출근하듯이 지냈었다. 그곳은 내가 군 입대 전부터 학교에 다니면서도 수련했던 곳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대학 입학 후 학교도 전혀 바라지 않던 곳이라 학교 다니는 것 자체가 싫었다. 그래서 운동에만 매진했었다. 그러다보니 2학기간 취득한 학점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 한 학기에 취득한 학점에도 모자라는 것이었다. 그러한 오류로 인해 복학 후 악착같이 공부하여 우리 과에서 그야말로 최고 성적을 유지했지만 장학혜택 한 번 받아보지 못했다. 학교 당국 왈, 1학년 때 기간 내 취득하지 않은 결점 때문이라고 했다. 울분이 발동했지만 참는 길 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나의 학점 성적표에서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다.) 또한 집에 있을 때도 집 앞의 솔숲에 터를 닦아 도장을 만들어 종일 운동만 하다시피 했었다. 그것이 나의 주요 일과였고, 또한 취미이자 유일한 낙이라면 낙이었던 것이다. 우리 집에는 공장 근로자들 7~8명이 하숙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양모님(나는 양자로 입양 했었다)의 친정이 있는 전라도 해남 출신과 또 우연찮은 인연으로 작고하신 아버지가 경북 경주출신이라는 것을 계기로 알게 된 경북 울진출신의 청년들이었다. 일요일이면 주로 그들의 관심사인 격투기를 가르쳤다. 즉 권투글러브를 끼고 하는 격투기로 발로는 마음껏 차고, 글로브를 낀 상태에서 권투를 하듯 자유형 싸움연습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정통한 무도인 태권도나 합기도 등의 방법과는 전혀 다른 격투기 방식이었다. 따라서 당시로서는 내가 ‘이건 무대뽀 싸움기술이다.’고 했었다. 사실 오늘날 말하는 일종의 스트릿트 파이트(길거리 싸움)형식이었다. 그들은 그 운동(?)을 대단히 즐거워했고, 또 열심히 배웠다. 청년들은 거의가 힘이 세고 근로자들이라 체력도 꽤 좋은 편이었다. 그들에게는 정통한 방법의 격투기 수련이란 시간관계며, 여타 여건 상 맞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짧은 시간에 바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싸움기술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로서는 권투를 우선시 하면서도 발로 차는 방법과 함께 상대를 넘어뜨리는 기술까지 가르쳤던 것이다. 사실 은 대단히 간단한 몇 가지 싸움  기술에 지나지 않았다. 좀 보태서 얘기하면 이랬다. 즉 간단한 기술이라고 하지만, 실전에서 적용하면 웬만한 싸움꾼이 아니면 적수가 되지 못할 정도였다. 즉 이 간단한 몇 가지 동작으로 상대를 두들겨 패면서 넘어뜨릴 수가 있는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수 십 년이 지난 후, 아들에게 한 가지 기술(?)을 가르쳐 준 일이 있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말로 표현하면 이랬다.~ 그런데 아들이 그걸 친구들에게 한 번 실습(?)해 본 후 나에게 말했다. 감탄의 말이었다. “아빠, 아빠가 가르쳐 준 기술을 써먹었더니 아이들이 전부 무서워 찍소리 못하더라.”라는. 아들은 중3때 대구에서 전학을 왔었고, 그 또래 아이들과 싸움으로 뽐내는 그런 시기에 있었다. 이 외에 실제로 경험했던 몇 가지 재미난 얘기가 더 있지만 다음 어떤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청년들이 비록 연습 중에 다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심한 부상은 없었다. 그러니 이런 류의 기술이지만 이를 가르치고 있는 나에게 그들은 당연히 ‘싸움이라면 우리 학생이 최고’라는 등식이 인식되었던 것이다. 특히 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줄넘기를 하면 그들은 정신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구경을 했다. ‘아, 어찌 저렇게나 잘 뛸 수가 있는가!’하는 감탄을 하면서. 더구나 한 쪽 팔만 가지고 굽혀 펴기를 해보이면 더욱 놀라곤 했었다. ‘아니 저런 깡마른 체구에 어디서 힘이 저렇게 나온단 말인가?’식의 경탄이 있었던 것이다. 그 외에도 땅을 짚지 않고 공중 회전하는 묘기(?)를 보이면 그들은 모두 입을 쩍 벌리는 감탄뿐이었다. 어쨌던 내가 학생이란 호칭으로 불리게 된 것은 대학을 휴학하여 복학할 입장에 있었고, 또한 다른 적당한 호칭이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