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 내 어머니’

박정철 (2014-05-10 06:43)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 23:24,25)   아카시아 향이 물씬 풍기는 5월이다. 어제 저녁에는 그래도 바닷바람에 꽤 쌀쌀하더니 오늘은 푹푹 찌는 여름이다. 이런 날에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더 많이 생각이 난다.   농사일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지만 이 맘 때쯤이면 풀을 맸던 기억이 난다. 피를 토하는 한 많은 여인의 가슴 맺힌 소리인 듯 쏟아내던 새소리를 들으며 뜨거운 뙤약볕에서 물을 매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도 부모님은 3-40년 전처럼 풀을 매느라 고생이 많으시겠다.   어버이날이다. 어저께 아내가 전화를 드렸지만 그래도 날이 날인지라 전화를 드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포도밭에 계신다. “아니, 어버이날에는 좀 쉬시지 이런 날에도 일하세요.” 입에 발린 소리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허허, 아들이 그렇게 말해 주기만 해도 기분이 좋네.” 하신다. 아버지의 말씀은 아들의 말처럼 절대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님을 안다.   몇 주 전에 핸드폰이 바뀌는 바람에 저장되어 있던 전화번호를 다 분실해 버렸다. 그래서 그 날 아버지께 부탁을 드렸다. “아버지, 핸드폰이 바뀌는 바람에 형제들 전화번호가 하나도 없는데 나중에 집에 들어가셔서 좀 불러 주세요.” 그랬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이 “지금 불러 줄 테니 받아 적으라.”고 하신다. “아니, 어떻게요?” 물었더니 “다 외우고 있다.” 하신다.   그 순간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우리 형제들의 전화번호를 80에 가까운 노인네가 다 외우고 있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쉽겠는가. 자식들을 향한 아버지의 속 깊은 정을 어렴풋 알만 하다. 내가 아빠로서 자녀들을 생각하는 것에 백분의 일만이라도 부모님을 생각하고 산다면 훌륭한 효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전화기에다가 아버지가 즐기시는 ‘이조년’의 시조 초장을 읊는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그랬더니 아버지가 받으신다.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만은’ 종장은 함께 한다.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